모른다는 정답

생물학 실험을 하다보면 갖가지 예상하지 못한 실험 결과들을 얻는다.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면 응당 설명을 요구하게 되고, 본인이 과학자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지식 안에서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내 예상 결과와 다른 실험결과는 그냥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지나가지, 대부분의 경우 진짜 그런가에 대해서 다시 실험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측 못했던 실험결과는 대부분 폐기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세포를 이용해서 실험하는 생물학자들이 실험이 예측과 다르게 나왔을 때(또는 실패했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루는건 ‘세포가 너무 오래 자라서’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한 다음에 어느 누구도 세포를 1주, 2주, 3주, 한달, 두달 키워보면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한 계속 반복한 다음에 정말 세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예측 못한(또는 실패한) 결과가 나왔다고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세포가 너무 오래 자라서 실험이 안될것이다’라는 것을 실험 시작전에 미리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자기 세포를 얼마나 오래 키웠는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결국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hindsight bias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설명은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가 맞을 것이다. 그리고 실험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거면 원인을 아예 설명하지 않고 커다란 물음표로 남겨놓는 편이 다같이 진실로 다가가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몸서리치게 못 견디고 그걸 자기가 이해가능한 범주로 바꿔놓아야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래서야 과학이 미신하고 다를바가 뭐가 있을까? 물음표는 물음표로 남겨 놓아야 누군가는 입증하려고 노력이라도 할테지만 그럴듯하게 설명해버리고 ‘믿기’시작하면 입증하려는 노력이 차단당한다.

매일하는 일과 듣는 일이 실험결과 발표와 설명이다보니 입증하려는 노력없는 수 많은 겉도는 설명들을 듣고 있는데, 귀를 막고 ‘설명하지마!’ 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재밌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있으면 10불을 걸고 누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매우 여러가지 장점이 있는데, 첫째 내기를 했으니 일단 누가 맞는지 다시 실험을 해봐야한다. 둘째 내기의 결과가 뚜렷해야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에 대한 구체적인 parameter를 생각해보게 되서 실험 결과를 좀 더 quantitative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내기의 상대방도 자신의 실험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를 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기를 건 사람이 메니저였고, 그 메니저가 자기 팀원들이 고작 10불을 따기 위해서 거짓 실험을 하지 않을거라는 신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긴건, 그 회사에서 내기를 거는 그 메니저는 내기마다 거의 다 졌다. 그다지 똑똑하진 않은 사람이었는데 최소한 내기를 통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걸 쿨하게 인정할 수 있는 열려있는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었다. 입증하려하지 않는 수많은 설명을 들을 때마다 나도 내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일단 내가 상급자가 아닌데다가 그 사람처럼 유쾌하게 내기를 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정말 아쉽다. 그리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실험 결과를 가지고 내기를 거는건 그다지 권장하는 분위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셀프 진로 상담

가끔씩 머리속에 떠오르는 축복이자 오만한 생각이 있다. “얼마를 주면 재미없는 일도 할 수 있을까?” 일단은 현재하고 있는 일은 재밌다는거니 축복이라고 할 수 있고, 돈 많이 주면서 나를 재미없는 일을 시킬 사람이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오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한테 당장 연봉 두 배를 줄 회사는 없을테니 내가 현실적으로 오퍼를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상한선은 현재 받는 돈에서 20-30K 정도 오른 금액일 것이다. 이만큼 준다고 하면 회사를 옮길까?

이제 업계에 들어온 지 4년정도 되서 간신히 초짜 티는 벗었지만, 대충 senior scientist 자리를 지원할만한 경력은 됐다. 그래서인지 종종 헤드헌터나 지인으로부터 지원해 보겠냐는 문의가 들어오곤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헤드헌터에게 계속 연락을 받으면서 헤드헌터의 본분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지시켜줘서 자신도 꽤 쓸만한 사람이구나라는 (많은 경우) 헛된 믿음을 심어줘서 모두의 멘탈을 고양 시키는데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업계인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각 회사가 헤드헌터들에게 돈을 쥐어주면서 무차별적으로 연락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몇 군데 인터뷰를 해보고 회사 탐색도 해봤다. 그런데 채용 과정에서 오퍼를 받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지인들을 귀찮게 하는 일이라 인터뷰만 보고 멈췄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다면서 연봉 적혀 있는 오퍼부터 적어주고 사람을 뽑아야 하는거 아니야? 얼마를 줄지를 알아야 내 지인들을 귀찮게 할지말지를 정하지. 사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인을 귀찮게 해서라도 추천서를 받아낼만큼 옮길 의지가 있는 사람을 더 뽑고 싶어할테니 딱히 잘못된 프로세스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 얼마를 줄지 모르는 상태로는 지인들을 괴롭힐만큼 내가 간절하지가 않았던거지. 그래도 한 회사에서는 얼핏 연봉을 이야기해줘서 만약에 지원해서 붙는다면 현재보다 최소한 20K는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정도 더 주는걸로는 안 옮기겠다는 것이다. 왜?

일단 둘이 살기 때문에 지금 연봉으로도 401(k)를 맥스로 채우고 손익 분기점은 맞출 수가 있다. 그러니까 옮기지 않는다고 통장잔고가 계속 내려가거나 손가락만 빨아야하는 다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는 지금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들이 꽤나 흥미롭고 배울 것도 많다. 물론 게을러서 아직까지는 내가 잘하는 분야에 안주하고 있지만 여길 나가기 전에 꼭 배워야하는 기술들이 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목표이다. 내 목표는 ‘흥미로운 실험을 할 수 있으면서 밥 먹을 수 있을만큼 돈 벌기’ 이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 도달해야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게 더 중요하다. 게다가 말이 무척 잘 통하는 똑똑한 CEO랑 일을하는 것도 즐겁다. 나는 머리 좋은 사람들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어서 이 회사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외에 쓸때 없는 장점도 많다. CEO랑 co-founder가 게임을 좋아해서 매주 happy hour에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한 시간짜리 짧은 보드게임으로는 별로 성에 차진 않지만 그래도 같은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건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 들어왔을 때 내가 꿈꿔봤던걸 이 회사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해보겠다고 목표는 세워두고 있다. 이게 과연 매년 최소 2만불을 포기하면서 할만한 일일까? 사실 아닐 수도 있다. 난 의외로 흥미에 대한 역치가 낮아서 일견 지루해 보이는 반복 실험도 무척 즐겁게 한다 – 아니 사실은 반복 실험이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일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실험을 한 후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건 ‘이게 과연 재현 가능할까?’이다 – 사실 재현 잘 안된다.

다른데서도 비슷한 흥미로운 실험을 할 수 있으면 왜 안 옮길까? 사실 사원 넘버 이십 몇 번이 (그런걸 매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회사의 성과를 얼마나 나눠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스타트업에 들어 왔으니 회사가 성공하는걸 보고 싶기도 하고 버려야 하는 스탁옵션이 아깝기도 하다. Loss aversion bias에 가깝겠지만 (보통 스탑옵션을 버리고 옮기면 그만큼 준다고 하니…) 어쨌든 당장은 큰 일이 없으면 회사가 상장할 때까지 존버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사장님 날 놓치고 싶지 않으면 월급 좀 올려주세요!

Characterization of metabolic responses, genetic variations, and microsatellite instability in ammonia-stressed CHO cells grown in fed-batch cultures

세포를 키우다 보면 세포가 만들어 내는 노폐물 때문에 다양한 문제점들이 생긴다. 그래서 세포를 다루는 사람들은 주말이고 휴일이고 건강한 세포를 유지하기 위해서 출근을 해야한다. 물론 휴일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실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잠깐이라도 왔다갔다 하는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위의 논문은 세포가 만드는 노폐물 – 그 중에서도 암모니아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논문이다. 오른쪽의 보라색 그래프가 대조군인데 세포를 2주일 동안 키우면서 암모니아의 양이 점점 증가해서 최종적으로는 10mM정도까지 올라갔다. 자, 그럼 10mM만큼 올라간 암모니아가 세포에 무슨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려면 실험을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맨날 하는 것처럼 세포의 배지를 자주 갈아줘서 암모니아가 쌓이지 않게 한 후 암모니아가 쌓인 실험군과 비교를 하면 된다. 그런데 저자는 반대로 암모니아를 10mM추가로 넣고 실험을 진행했다(좌우 그래프의 빨간색). 문제는 10mM를 추가로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세포가 자라는게 대조군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거다(왼쪽 그래프 보라색 vs 빨간색). 그래서 저자는 암모니아의 양을 30mM 늘려서 세포를 확 죽이고(초록색) 실험을 한 후 결론을 뭐라뭐라 내렸다. 마치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망치로 무릎을 내려 친 후에 관찰을 했다는 것이다. 늘상 보는 그래프가 이 모양이지만 볼때마다 화가 나는걸 보면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된다.

있다, 많다

대학원을 다닐 때 다른 방에 있던 사람의 연구 주제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의 지도교수님은 포닥 때 면역을 연구하시면서 면역세포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인자를 찾아서 좋은 논문을 쓰고 교수님이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해당하는 인자를 제거하면 면역세포가 잘 못 자라긴 하는데 아예 성장을 멈추지는 않았다면서, 자기 제자에게는 왜 여전히 면역세포가 성장하는지에 대한 것을 연구해보라고 연구 주제를 줬다고 한다. 좋은 말로 하면 “또 다른 메커니즘을 찾아라”인데 내가 듣기에는 잔반처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교수님이 발견한 인자로 면역세포 성장의 90%(수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대부분) 정도는 설명할 수 있는데 남은 10%를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주제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연구하고 싶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좋게 생각하면 남은 퍼즐 조각을 맞춘다는데 의의를 둘 수도 있지만 그 조그마한 퍼즐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기에는 이 세상에는 아직 맞추지 못한 아주 커다란 퍼즐 조각들이 너무 많다.

논문을 읽고 나면 보통 머릿속에 박히는건 새로운 발견이다. 새로운 접근법이라던가, 새로운 유전자라던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숫자가 기억되는 일은 잘 없다. 위의 예시에서도 그 사람이 남은 10%의 퍼즐조각을 맞춰서 논문을 냈다면 새로운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췄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중에 교수님과 제자의 논문을 같이 읽어 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면역세포의 성장을 조절하는 2개의 메커니즘이 남아 있지 그 2개의 메커니즘이 90:10의 비율로 작동한다고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애초에 후속 논문에서 그렇게 비교를 해서 자신의 연구를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논문쓰는 지도를 받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가에 대해서 배웠다. 조작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수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는 글로써 잘 설명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이건 아니건 그 논문을 읽은 독자들은 각 유전자들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갖고 있는지를 기억하기 보다는 잘 짜여진 논리구조만 기억하게 된다. 맥락없이 주어지는 수치들보다는 논리가 훨씬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진짜 중요한건 논리가 아니라 수치다.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 수만가지 가설이 제시되고 정말 기상천외한 메커니즘들이 발견되서 찬사를 받지만 얼마전에 미국에 계시는 한인 제약인 모임의 웨비나에서 들었던 ‘신약’의 타겟은 수십년전에 초파리에서 발견된(맞나?) Map kinase pathway다. 유전자의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면 그 옛날의 조악한 실험도구와 실험설계에서도 발견이 될 수 있었을까? 요즘 epigenetics, RNA modification, non-coding RNA기타 등등 생물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보여주기 위한 수 많은 메커니즘들이 발견되고 이를 통해서 생물을 더 잘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제일 효과 좋은 것들은 유전자 클로닝 하나 해서 논문내던 시절에 선배님들이 이미 많이 밝혔고 후배 과학자들은 cult of the new(내가 알고 있는 단어라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보드게임에서 쓰는 용어였다. 무조건 새로운 게임만 찾는 문화를 말한다)에 빠져서 무조건 새로운 유전자, 새로운 메커니즘에 집착하게 됐다. 새로운 메커니즘이 많은걸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냥 새로운 메커니즘이 있을뿐이다. 새로운걸 알아내는건 흥분되는 일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계속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는 특성을 막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있다고 그것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건만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그렇게 받이들이도록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창 1등 논쟁이 있던 시기에 보았던 한 포스팅에서 어떤 물리학과 교수님이 과학고를 나오고 올림피아드까지 출전했던 학생이 자기가 틀린 시험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하고 자신이 올림피아드 출신이라 틀릴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더라는 경험담이 올라왔다. 일단 그 글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그런 학생도 올림피아드에 보낼 수 있을만큼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올림피아드 같은거 안 가본 일반고 학생이 더 물리를 잘한다는건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논리가 나오면 반대편에서는 단 하나의 반대 예시만을 가지고도 너무나 쉽게 반박을 해댄다. 단 하나만 제시해도 그것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게 하는건 매우 쉬운 일이다. 수 많은 신문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어떤 일이 ‘있었다’라고만 서술하지만 그걸 쓰는쪽이 노리는 것도 마치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읽는 사람들도 그렇게 읽기 쉽다. 개인 포스팅이건, 유튜버의 썰이건, 심지어 신문기자의 기사라고 할지라도 주류 사회현상이 무엇인지는 사실 알기 쉽지 않다. 무언가가 많다라고 주장하려면 일단 가공되지 않은 많은 양의 데이터가 있어야하는데 만들기도 쉽지 않을뿐만 아니라 정보를 가진 사람이 쉽게 줄리도 없다. 물론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확보한 후에도 (의도적으로) 잘못된 통계 사용으로 어차피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므로 데이터가 있다고 꼭 더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있다’를 ‘많다’라고 주장하면서 서로의 논리를 공격하며 끊임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수 많은 ‘있다’를 보면서 무엇이 진짜 ‘많은’ 것인지 읽어낼 수 있는 현자도 있겠지만 난 무엇이 많은지는 모르겠고, 최소한 ‘있다’를 ‘많다’라고 읽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야할 것 같다.

말 잘듣는 아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른들 말을 꽤 잘 듣는 아이였다. 손들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고 배워서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짧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다른 아이들이 그냥 건너갈 때 혼자 손들고 건너다녔던 기억이 있다. 말을 잘 들었다기보다는 멍청하고 고지식하다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겠다. 무언가 다툼이 일어나는걸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가 하라는건 충실하게 잘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군말 없이 심부름 시키면 갔다오고, 엄마가 같이 장보러 가자고 하면 같이 가서 낑낑대며 산 물건들을 들고 왔다. 만화책도 보지 말라고 해서 안 보고, 오락실도 평생 두 번 정도 가본 것 같다. 웃긴건 게임잡지를 보거나 PC방에 가는건 딱히 말리지 않으셨는데 기준이 뭔지 궁금하긴하다. 그렇다고 마냥 착한 아이라는건 아니고 몰래 게임은 열심히 했다. 그러다 들키면 (지금 생각으로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놨는데, 다 알고 계셨을테지만 거짓말한다고 추궁당한적도 거의 없다. 어쨌든 그럭저럭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는 엄마와 혼나는 일을 만들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아들의 콜라보로 말 잘듣는 착한 아이로 컸던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도 잘 들었고 (그렇다고 딱히 선생님한테 예쁨받는 학생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검은 오오라를 뿜고 다녔던건지…) 어르신들이 뭐라고 하면 그럭저럭 믿는편이었다. 사회생활을 미국에서 시작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닐 수도 있지만 (한국이건 미국이건) 정부에서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믿는편이고 그 뒤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한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정부 각부처에는 국민들의 인기 투표로 뽑은 선출직 몇 명이 수장으로 있지만, 사실상 그 밑에서 대부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행시에 합격한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나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보면서 판단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한다. 물론, 그렇게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자리에 올라가보지 않은 이상 그저 몇몇 기사와 발표만 듣고 잘잘못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나를 포함한 개인은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볼 수 있는 데이터도 훨씬 적을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고려하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미국 정부가 판데믹을 대처하는 자세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본인들이 똑똑하다고 믿는 개인들은 정부를 멍청하다고 비난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멍청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난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서 마스크 쓰라고 줄때 비로소 마스크 쓰고 다녔고, 보스턴에서 안 쓰면 벌금을 매기겠다고 했을때부터 밖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 동네에 확진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주정부가 적당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서서히 경제를 재개하기 시작해서 식당도 문을 열고 체육관도 문을 열었고, 심지어 놀이공원도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사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곳을 가는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는 사람들로 비난을 받고 있다. 난 식당이 문을 열기 시작했으니 그동안 집안에서 답답했을 아내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사람들과 약속도 잡고, 건강해지기 위해서(실제로 건강해질지 아니면 병에 걸려 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체육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개개인마다 본인 건강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다 다를테니 지금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집안에 있는건 본인 건강을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식당문을 열거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등의 정부가 해도 된다고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리거나 그런 사람들을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건 사실 좀 이해하기 힘들다. 멍청한 정부의 말을 듣지 말라는 캠페인을 펼치기 전에, 왜 정부가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당연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정부가 진짜 그렇게 멍청한가? 내가 그자리에 있으면 항상 그것보다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는 아는데 표 떨어질까봐 못하고 있다고? 그럼 옳은 결정을 막고 있는 그 표를 주는 (이기적이고 멍청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익은 무시해도 되는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수 많은 요구들을 듣고 있는 자리에서 내린 결정을 그렇게 쉽게 무시하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하고 있을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사회를 보는데 매우 게으른 사고를 갖고 있는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정부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해도 된다고 하면 그냥 하면서 사는게 편하다. 그러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정부 책임이고, 개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정부를 믿은 내 책임인데, 지금까지 어르신들 말 잘 들어서 손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할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각종 신문과 SNS가 텅빈 식료품 선반 사진들로 도배가 됐다. 나랑 아내는 별로 이런데 휩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원래 우리가 장을 봐야하는 날에 반쯤 두려운 마음으로, 반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장을 보러 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Whole Foods Market. 내 수입이 아직 여기서 장을 볼만큼 충분하진 않지만 거의 여기서 밖에 살 수 없는 품목 – envy apple과 sumo orange – 때문에 이 둘을 살 수 있는 시즌에는 과일을 사러 항상 이곳으로 올 수 밖에 없다. 텅빈 진열장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고, 가게는 딱 평상시만큼 붐볐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Hmart Burlington. Hmart Cambridge의 선반대가 털린 사진도 한 장 봤고, 차가 없는 사람들은 Burlington에는 접근하기 힘들테니까 조금 더 사정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쪽으로 갔다. 눈에 띄는 점은 주차를 하기 훨씬 편했다는 것 뿐이었고, 여전히 별 차이가 없었다. 평상시에 자주 사 먹던 대만산 카스테라가 큰 사이즈가 없어서 작은걸 사 와야했다는 것만 제외하면 평상시처럼 살 수 있는걸 다 샀고, 여전히 텅빈 진열대 따위는 구경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장 보러 제일 자주 가는 South Bay 지역의 Stop & Shop이다. 여기서는 신문이나 SNS에서 봤던 것 같은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육류 코너는 거의 전멸이었고, 빵과 파스타, 그리고 500mL짜리 물병도 동이 나 있었다. 마트에 따라서 물품이 동이 나고 나지 않고가 달라지는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가격 + 마트 이용자의 차이 + 마트의 물품 수급능력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겠지. 하지만 여전히 장을 보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3갤런짜리 물통은 여전히 충분히 있었고, 요즘 물 대신 우리가 주로 마시는 칼로리 없는 탄산수도 평상시처럼 충분히 많이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라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빵이 없으면 팬케이크라도 구워 먹으면된다. 채식주의자들도 있는데, 육류 좀 못 먹는다고 무슨 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먹을 것이 충분하다는 기사나 SNS 포스팅 같은건 보지 못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뉴스가 된다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자주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라고, 그것이 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몇 십년 만에 한 번 일어나는 판데믹이 예외적인 일이라고 안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뉴스로 접하는 우리 주변의 소식은 한번쯤 걸러서 읽고, 공유를 할 때도 조심하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한다. 똑같이 식료품점에 육류 코너가 비었어도, 아무도 그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때는 실제로 그걸 두 눈으로 본 사람들만이 당황하고 무언가 행동을 취하겠지만 그걸 기자들이 기사화하고, 일반인들도 SNS에 포스팅해서 여러 사람에게 퍼졌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패닉을 불러오고 사재기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공유의 목적이 내 주변 사람들은 미리 알고 대처하기를 바라는 선의에서 왔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 내 주변 사람들이 미리 사면 내가 모르는 우리 이웃이 못 사게 된다. 난 휴지를 쌓아놓고 안심하기보다는 그냥 필요할 때 마트에 가봐서 없으면 허탈해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진짜 휴지가 없으면 주변에 그정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

기자는 학자가 아니다. 사회 전반을 파악하기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만을 올리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은 사람들이 두 눈으로 보고 내가 겪은 내용보다는 기사, 유튜브, 각종 포스팅을 보고 우리 사회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 같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뉴스보다 더 자극적인걸 찾아서 동분서주하는 기자들과 유튜버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좋아요, 댓글 하나 받아보려고 열심히 포스팅을 하는 분들의 글은 사회의 극단적인 단면만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눈으로 본 모습만 보고 살자니 그것 역시 사회의 너무 조그만 면 밖에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난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는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조금 다른 것이지만, 논문의 데이터보다 내가 직접한 실험이 훨씬 믿음직하다) 그럼 사회의 큰 흐름을 보려면 무엇을 봐야하는 것일까?

Emperor of all maladies

박사를 하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가 끝도 없이 무식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1시간 가까이나 걸리는 통근열차라 오며가며 책을 읽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는 데다가 마침 책에서 나오는 많은 업적들이 보스턴 근처에서 이뤄진 것이라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게다가 논문에 주구장창 등장하고 가끔 지나가면서 보는 Dana-Farber Cancer Institute의 Farber가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도 이 책에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Dana가 누군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암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역사상 처음 암으로 의심되는 환자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대부분은 1900년대에 암을 치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다양한 치료법들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읽다보면 1900년대 중후반까지도 지금의 짧은 의학 지식으로 봤을 때 거의 야만에 가까운 의료행위들이 꽤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국소적으로만 퍼져 있는 암을 전이를 막는다는 핑계로 광범위하게 파내서 멀쩡했던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또 그걸 얼마나 더 많이 파냈는가를 거의 경쟁하듯 자랑하던 시대가 있었고, 초창기 약물치료의 성공 이후로 모든 암은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점점 더 독한 약들을 처방해서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갔던 여러 임상시험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임상시험이라는 개념도 정립되기 전에, 그리고 암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Farber는 현재까지도 약물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약을 찾아내서 암 치료에 획기적인 한 획을 긋게 된다. 그 외에도 빈약한 증거들을 가지고도 뛰어난 추론 능력으로 획기적인 치료법들을 찾아냈던 이야기도 종종 접할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그 당시의 기술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발견은 천재이기 때문에 가능한걸까? 아니면 천재가 운이 좋아서 우연히 옳은 방향으로 가설을 제시한걸까? 달리 이야기하면 더 똑똑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진실에 가까운 가설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것일까? 아니면 비슷하게 똑똑한 사람들이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연히 더 진실에 가까운 가설이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의 천재들이 다양한 가설을 내세웠는데 우연히 상대성 이론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하면 무언가 거부감이 든다. 그것보다는 아인슈타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가설을 내세웠다고 이야기하는게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이상하게 나는 의학/생물학에서는 꼭 그렇게 적용되는 것 같지가 않다. 똑똑한 사람이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반면에 무식하게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진실에 더 가까운 가설을 내놓기도 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좋은 논문을 내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운도 좋아야 한다는게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빼어난 통찰력을 가진 소수가 획기적인 발견을 해내는게 아니라 수많은 장님이 지팡이 짚어나가듯이 발전하고 있는 생물학을 보면 참 멋 없어보이다가도 이런 노동집약적 과학/산업이니까 나 같은 사람도 밥 벌어먹을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교 때 처음 생물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사실은 인간의 질병 연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많은 질병 연구들은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어차피 완치도 힘든데 남은 시간을 항암 치료로 고통 받으면서 더 오래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여전히 항암제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보면 평균 3개월 수명 연장, 1년 연장 등등으로 성과가 나오는데, 그 연장된 수명이 과연 얼마만큼의 삶의 질이 보장된 수명일지가 더 궁금했지만 그런건 데이터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 책에서 놀라운 사례가 하나 제시됐는데 질병에 대한 유전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탄생한 어떤 약 덕분에, 그 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진단이 됐다하면 몇 달 내로 사망 선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질병이 그 약이 나온 이후로는 거의 기대수명에 가깝게 살 수 있는 질병으로 완전히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완치에 가까운 몇몇 기적의 약을 제외하고는 시판중인 많은 약들은 사실상 제약회사들이 돈을 벌면서 진행하는 생체실험에 가까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많은 동물 실험을 한다한들 결국은 사람한테 먹여봐야 무슨 효과가 있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시판하고 있는 약으로부터 얻는 정보만큼 값진게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임상시험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도 나온다. 임상시험은 매우 기나긴 과정이고, 그 약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한들, 임상시험 기간이 다 끝나야만 약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승인이 나기까지 약을 기다리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에이즈 환자들이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시위를 하면서 약을 달라고 아우성을 쳐서 결국 약을 더 빨리 받아냈고, 항암제를 찾는 환자들도 에이즈 환자들의 성공(?)을 보면서 비슷하게 FDA를 압박해서 종종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1900년대처럼 무차별적으로 약을 환자한테 시험해보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본인이 직접 시험대상이 되고 싶다는데도 못하게 막는건 과연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임상시험을 아무나 받지 못하게 막는건 마치 안전을 위해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암 환자들은 사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으면 빠르던 느리던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게 보이기 때문에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고(설사 뛰쳐 나가다 옆에 오는 트럭에 치여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보려는 노력을 막아야하는 이유를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정교하게 control되지 않은 임상시험 결과가 약의 효과를 증명하고 승인을 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다.

정리 정돈 잘하기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항상 마무리를 잘 짓는게 어렵다. 대부분의 샘플들을 자신이 보관하고 있고, 각자 레이블을 하는 방식도 다르다. 많은 경우에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약어로 레이블을 하기 때문에 – 수 많은 샘플을 레이블하기도 귀찮고 튜브가 작아서 써 놓을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다 – 설사 남겨놓고 떠난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이게 무슨 샘플인지 알아볼 방법이 거의 없다.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랩 사람들 대부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무리 레이블을 잘 해놓고 따로 파일을 만들어서 이게 무슨 샘플이라고 자세하게 적어놔도 그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 찾아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1.이 샘플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느냐? 2.이걸 누군가 다시 꺼내서 쓸 일이 있느냐? 3.다시 만들 수 있느냐? 였다.

사실 처음 석사 마치고 유학 나올 때는 너무 바쁘기도 했고 (사실 마무리할 때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정리하고 나오기가 쉽진 않다), 무엇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쓰겠지 라고 생각하고 대충 그 자리에 다 두고 나왔다. 그러다가 박사를 하면서 그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샘플이 어디에 있고, 무엇인지 알아보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달았고 박사를 졸업하면서는 내 논문에 실렸던 샘플들과 남들도 사용하는 Primer와 몇몇 Plasmid를 제외하고는 몽땅 다 버렸다. 다행히(?) 교수님이 정리정돈을 잘하고 가야한다고 여러번 압박을 주셔서 남겨놓은 샘플들을 엑셀 파일로 만들어서 무엇인지 설명도 해 놓고, 내 엉망인 글씨를 읽어야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 튜브에 원래 쓰여 있는 글씨를 메탄올로 지우고 새로 (내 기준에서는) 또박또박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어쨌든 내가 논문을 작성할 때 사용한 샘플들은 그 존재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남겨놓고 가긴 했는데 사실 위에 적어놓은 기준 2와 3에 따르면 과연 이걸 남겨 놓을 필요가 있었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만드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cell line들은 내가 많들어 놓은걸 사용하는게 의미가 있지만, 그 외에 만드는데 1, 2주 정도가 걸리는 RNA, protein 샘플들은 굳이 이걸 누가 다시 쓸까 싶었다. 보통 오래된 샘플들을 다시 꺼내서 실험하는 경우에 찝찝해 하는 경우가 많다 – 심지어 내가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샘플을 내가 다시 쓰는 것도 가끔 꺼림칙하다. 혹시나 써서 실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혹시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안나오면 샘플이 오래된 탓을 하고서 다시 실험을한다. 여기서 웃긴건 오래된 샘플을 써서 실험한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면 샘플이 잘 보존됐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이라도 오래된 샘플이 찝찝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오래된 샘플은 그냥 버려야한다.

샘플들은 나름 열심히 버리고 필요한건 정리를 잘해놨는데 문제는 컴퓨터 파일을 제대로 정리를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나가면 내 컴퓨터에 접속할 수 없다는 생각을 못하고 파일들은 그냥 컴퓨터에 놔두고 나왔는데 그것 때문에 대참사가 일어났다. 내가 꽤 기여를 많이 했을 수도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제1 저자가 내가 만들어 놓은 컴퓨터 원본 파일을 내 컴퓨터에서 꺼낼 수가 없었고 결국 그 데이터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논문에서 이름이 빠졌다 ㅠ.ㅠ

회사에서 나올 때는 조금 더 과감하게 진행했다. 나만 사용하던 enzyme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고 사실 다른 사람들이 쓰려면 쓸 수도 있었는데 다 버렸다. 원래 처음에 회사 들어올 때 이곳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내가 그 시스템을 따라가기만 하면 정리가 매우 잘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물품들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지만, 직접적으로 상품과 관련이 없는 연구에 대해서는 학교랑 거의 비슷하게 개인들이 알아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비슷한 enzyme인데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거기다가 내가 산 enzyme까지 추가하고 싶지 않아서 다 버렸다. 게다가 회사가 돈이 많다보니까 사람들이 inventory에 뭐가 있나 열심히 찾기보다는 그냥 새로 사는걸 선호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회사에서 나는 랩의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연구를 하다보니까 누가 새로운 사람이 와서 내가 하던 연구를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필요 없는 (그리고 있는 줄도 모를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심지어 새것도 뜯어서 다 갖다버렸다. 회사에서는 내가 그렇게 많이 버린 줄 모를테니까 아마 나한테 감사하진 않겠지만 그냥 다 놔뒀다면 언젠가 정리를 하면서 ‘대체 이걸 어디다 쓰는거야?’, ‘언제적 물건이 아직도 남아 있는거지?’ 하면서 남겨놓은 사람한테 욕을 한바탕 퍼부었을 것은 분명하다.

박사 때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남아도는 외장하드를 하나 가져다가 파일들도 몽땅 옮겨놨다. 사실 내가 회사에서 남겨야 하는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막판까지 실험에 매달리느라 보고서는 거의 작성하질 못했고 draft만 대충 작성해서 넘겼는데 아마 디렉터가 내 보고서를 열어봤다면 그동안 쌓아놨던 좋은 관계가 몽땅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한다. 그래도 내가 실험했던 결과들은 각종 미팅에서 발표한 자료들에 남아있으니까 좀 봐주지 않을까 ㅠ.ㅠ 그리고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일단 명확한 결과가 머리속에 박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결과를 도출하게 만든 세세한 데이터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는 덜 중요하지 않을까…

항상 새로운 랩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면 전보다는 좀 더 정리를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지금 시작하는 곳이 스타트업이다보니 학교처럼 모든 개인이 샘플을 각자 정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만 혼자 정리하는 시스템을 잘 갖춰놔봤자 티도 안날텐데 꼰대처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시스템을 정립하자고 해야하나, 아니면 편하게 묻어가면서 각자 알아서 정리하게 놔둬야 하나 고민이된다.

정규직 찾기

현재 있는 직장에서는 올해 9월까지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기전에는 직장을 잡아야했다. 물론 지금 직장에서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지만, 굳이 연봉도 낮은 포닥 생활을 더 오래하고 싶지 않아서 매니저에게 올해 3월부터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매니저도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고지식하게 3월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indeed.com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linkedin을 통해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과 같은 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다면서 혹시 아는 사람 없냐는 연락이 왔다. 어? 나 지금 직장을 찾고 있는데? 우리 그룹에서 이 회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길래 혹시 이 회사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 너 지금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어? 난 너 다른 일 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지.’ 응? 내가 뭘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적이 없는데? 나도 내가 뭐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저 사람은 내가 다른거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아는거지? 내가 회사에서 월급 루팡하던게 들킨건가. 어쨌든 다른 회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물어봤더니 거기 갈거면 우리 회사에 남으라면서 뜬금없이 정직원 오퍼가 날라왔다. 고작 3일을 주고 고르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 거절을하고 여전히 3월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뜬금없이 꽤 큰 회사에서 또 연락이 왔다. 무려 senior scientist 자리라면서 전화 인터뷰를 하자는거였다. 게다가 위치도 캠브리지라서 내가 가고 싶은곳이라 잘됐다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했다. 처음에는 senior scientist 자리라고 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정작 전화를 하니까 나는 경력이 짧다면서 scientist 자리를 주겠다는데서 일단 기분이 약간 상했다. 결국 senior scientist가 필요해서 포스팅을 한건데 나를 그 자리에 앉히고 scientist를 주면 하는 일은 비슷하게 하면서 더 싸게 부려먹겠다는거잖아? 게다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 그룹에 대해서 들었는데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일을 하기에는 인원이 좀 적어보였다. 물론 automation이 좀 더 잘되어 있으면 인원이 크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일단 인원이 적다는건 성장하고 있는 그룹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난 research가 좀 하고 싶었는데 그 그룹에 들어가면 빼도박도 못하고 정해진 일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하는 development에 몸을 담아야하는 것 같았다. 지금 있는 그룹도 development를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research도 같이 진행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그렇게 작아서야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없어보였다. 문제는 내가 주제 넘게 저런 이야기들을 인터뷰하면서 열심히 토로를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실수를 깨달아서 ‘저는 작은 그룹도 좋아해요~’라고 어필을 해봤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며칠후에 탈락했다는 통보가 왔다. 내가 지원을 한적도 없고 자기들이 먼저 인터뷰 하자고 했으면서 탈락시키다니 왠지 찝찝했다.

그리고 드디어 3월이 왔다! 그동안 월급루팡 하면서 레쥬메를 열심히 고쳐놨기 때문에 3월 땡치자마자 지원을 했다. 처음 지원한 회사는 캠브리지에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는 indeed.com에서 전혀 검색도 되지 않았었는데, 예전에 우리 그룹으로 자기들 제품 팔려고 발표를 하러 온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세포 엔지니어링을 하는 회사인데 machine learning을 통해서 최적화를 한다고 해서 나 혼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발표를 들었었는데, 우리 그룹에서는 이게 뭔지 이해를 전혀 못해서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회사였다. 그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잡 포스팅이 있었고 마침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을 했다.

회사에서 올라오는 직업 포스팅을 보면 사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게, 대부분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 위주로 사람을 뽑는다. 사실 난 생물학자를 뽑기로 결정했다면 경험보다는 얼마나 깊게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물학 실험은 다 거기서 거기이고, 설사 처음하는거라도 박사급 정도 되는 인력이라면 배우는데 크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뽑아 놓고 처음부터 일하라고 던져주지도 않고 결국은 자기들의 프로토콜에 맞춰서 새로 교육을 시킨다. 그럴거면 차라리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았던 사람이 들어와서 그 분야를 배우면 자기가 원래배웠던 것도 이 분야에 적용을 시켜볼 수도 있고,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깊게 사고한다는건 사실 레쥬메 상이나 인터뷰로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주로 같은 일을 해봤던 사람 위주로 뽑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 스타트업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경험을 원했고, 이런 일을 해봤던 사람을 드물었기 때문에 레쥬메를 올리자마자 폰 인터뷰 요청이 왔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CEO랑 직접 통화를 했는데 이야기가 술술 잘 풀려서 전화 통화하는 와중에 on site 인터뷰 날짜를 바로 잡았다. 이럴수가!! 내가 지금 직장을 잡기 위해서 100군데 지원하고 고작 on site 인터뷰는 지금 회사 하나 받았는데, 이번에는 고작 1개 지원해서 인터뷰 오퍼를 받아냈다. Industry에 한 번 발을 담그면 그 다음부터는 이직이 쉽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치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쉬웠다.

그런데 정작 발표를 하러 가자니 거기서부터 난관이었다. 보통 이직을 하게 되면 현재 있는 회사에 알리지 않고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었는데, 나는 현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인터뷰할 회사에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발표 승인을 받아야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터뷰를 한다고 털어놓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는데 변호사들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서 발표 전날에서야 간신히 PPT자료를 승인을 받았다. 몰래 옮겨야 되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발표를 하는거지? 그냥 몰래 발표 하는건가?

On site 인터뷰는 평범했다. 작은 회사다보니 CEO가 자기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나에게 소개를 하고, 내가 1시간 정도 발표를 했다. 그 다음에 점심은 machine learning을 하는 computer scientist들과 같이 먹었는데 배경이 전혀 다르다보니 대화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는 실제로 나와 일을 같이하게 될 생물학자들과 같이 이야기를 한게 끝이었다. 이 회사에서 인상적이었던건 2가지. 현재 있는 건물이 작은 바이오텍들이 모여 있는 인큐베이터인데, 내가 좋아하는 탄산수를 비롯해서 다양한 차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심지어 스낵도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큰 회사에도 이런건 없는데… 인터뷰한 회사의 CEO도 여기 렌트비를 비싸게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건 적극적으로 이용해야한다고 이것저것 먹으라고 막 권해줬다. 또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은 회사라 그런지 한 오피스 공간에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데, 마치 도서관처럼 길다란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거기에 칸막이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앉아 있었다. 앉는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CEO도 주로 로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가게 되면 난 그냥 랩에서 생활해야겠다.

어쨌든 평범한 인터뷰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뜬근없이 2차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지금 있는 큰 회사에서도 인터뷰 한번하고 끝났는데, 여긴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 하면서 투덜대고 있는데, 더 가관이었던건 2차 인터뷰는 같이 앞으로 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brain storming을 하자는거였다. 뭐? 그건 뽑아놓고 해야하는거 아냐? 아이디어만 빼 먹고 안 뽑으려고? 어쨌든 난 직업을 구해야하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런데 말이 brain storming이지, 사실은 대본 없는 압박 면접이었다. 상호간에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미리 준비한 질문을 던져놓고 나 혼자 brain storming을 해야하는거였다. 뭘 질문할지를 모르니 준비도 거의 못해갔고 이건 박사 디펜스보다 힘들었다. 게다가 MIT대학원생 위주로 구성된 회사라서 그런지 일반적인 생물학 전공자들과는 질문내용이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생물학 세미나에서의 질문을 지식에 대한 것을 물어보거나 자기가 궁금한 실험을 해봤는지를 많이 물어보는 반면, 이번 2차 면접은 방법에 대한 질문 위주였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현재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기존의 방법을 어떻게 바꿔서 그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서 주로 고민을 하고 나에게도 그런 질문들을 던져줬다. 이런식으로는 사고를 해본적이 없어서 답을 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들도 대부분의 경우 정답을 모르는 상태로 질문을 하는거라 내가 뭐라고 말하던 반응이 별로 없었다. 최소한 내가 그들의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했다는건 확실했다. 어쟀든 쭉 생물학계에 몸을 담았다가 공학적인 방법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신선하기도 했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도 공학에 조금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 회사에서 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는 순차적으로 레퍼런스를 요구해서 교수님과 현재 매니저의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역시나 나에게는 과분하게도 두 분 모두 나에 대해서 너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인터뷰한 회사의 CEO가 좋은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고 감탄했다는 연락이 왔고, 오늘 전화를 통해서 오퍼를 받았다.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연봉협상을 해야했는데, 현재 회사에서 받은 오퍼가 어느 정도고 이것보다는 많이 받고 싶다니까 거기서 $1,000을 올려줬다(…) 얼마전에 우리 회사에 있는분으로부터 연봉 협상은 먼저 가격을 부른 사람이 패자라고 했는데 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뭐 사실 연봉은 협상하기 힘들거라고 알고 있어서 그 외에 이사 비용이나 거기 이사할 때까지 통근 비용좀 달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그런건 해본적이 없지만 그정도는 해 줄 수 있을거라고 했다. 역시 미국은 뭐든 일단 요구는 다 하고봐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당히 고생했던 첫번째 직장 구하기와 달리 첫번째 정규직을 잡을 때는 고작 1군데 넣어서 오퍼를 받고 끝나버렸다.

금손 VS 똥손, 보드게임에서 확률 예측

요즘 판데믹 레거시를 하고 있는데 멤버 중에 한 명이 내가 플레이어덱을 섞으니까 에피데믹 카드가 너무 빨리 나온다면서 나보고 똥손이라고 내가 섞지 말라고 한다.  일부러 에피데믹을 아래 넣지 않는 한 사실 누가 섞던 언제 나올지는 예측할 수가 없는 문제인데 내가 섞지 말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농담으로 듣고 그러려니 했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감염덱에서 무슨 카드가 나올지 대충 확률을 계산해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기에 맞춰서 액션을 수행하고 예측에 맞게 나와서 기뻐하는건 좋은데,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카드가 나와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위의 멤버는 종종 ‘거봐! 내가 그거 나올 것 같다고 했잖아!’ 라면서 팀을 향해 약간의 비난 아닌 비난을 한다. 일단 그 카드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한적도 없거니와 설사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럼 그에 맞춰서 액션을 하도록 유도를 해야지 카드가 나온 다음에 그런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판데믹에서 큐브가 3개씩 쌓인 도시가 여러 개 있다면 그 중에 어떤 도시를 먼저 구할 것인가는 outbreak이 터졌을 때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내 액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서 정하는 것이지, 어떤 감염 카드가 먼저 나올지를 예측해서 행동을 하는건 그냥 찍기 게임과 다를바가 없다. 마치 주사위를 던진 다음에 ‘거봐! 내가 4가 나올거라고 했잖아!’라고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게임을 하다보면 주사위를 잘 굴리거나 카드를 잘 뽑는 사람에게 금손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그 반대의 사람에게는 똥손이라면서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이것도 말도 안되는데 누군가가 그런 별명을 붙여주고 나면 확증편향이 생겨서 그런쪽 이벤트만 더 눈에 들어오게 되서 생기는 일일뿐이다. 보드게임을 ‘많이’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운이 없는 날과 운이 좋은 날이 사실 비슷하게 있다. 거기서 더 웃긴건 ‘네가 금손이니까 이번에는 네가 굴려봐!’ 또는 ‘네가 카드 뒤집어 봐!’라고 하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이야기하기 민망하지만 모든 주사위는 독립적이라 전에 잘 굴린거랑 지금 잘 굴리는건 전혀 별개의 문제이고, 카드는 누가 뒤집던간에 이미 정해져 있다. 물론 농담처럼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내가 농담을 이해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별로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났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꽤 많은 사람들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어떤 확률에 ‘희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카드가 나올 확률이 더 높다거나 특정한 주사위 눈금이 나올 확률이 높다면 그걸 계산해서 다음 전략을 생각해보는건 의미가 있는 일일것이다. 예를 들어 간츠 숀 클레버에서 파란색 보너스를 얻었을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나올 확률이 적은 2, 12 등의 숫자를 지우는건 의미 있는 전략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높은 숫자가 나오길 바라면서 마지막 주사위로 주황색을 남기는건 그냥 도박이지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확률을 계산해서 높은 확률이 나오는 쪽으로 선택을 하는건 의미가 있지만 주사위 눈금처럼 정확히 나올 확률이 같은 이벤트에서 어떤 특정한 값에 기대를 갖는건 그냥 의미없는 찍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드게임에서 찍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어떤 값에 기대를 걸고 주사위를 굴렸을 때 그 눈금이 나온다면 그냥 심드렁하게 굴린 사람보다는 훨씬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그 눈금이 안 나왔을 때는 더 실망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실망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서 자연스럽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고를 하게 됐다. 그래서 주사위를 굴릴 때도 그냥 무슨 눈금이 나와야 나한테 좋을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일단 굴린다. 생각해봤자 그 눈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다 최근에 카지노에 가서 기대가 주는 희열과 실망을 제대로 느껴봤다. 룰렛에서 칩을 걸고 나니까 저절로 몸이 일으켜지면서 룰렛의 공이 어디로 가는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게 됐던 것이다. 이래서 가장 재밌는 게임은 돈 걸고 하는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는거구나.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홀짝을 맞추는건데도 한판 한 판의 감정 기복이 엄청나서 몇 판 하고 나서는 긴장해서 손이 차갑게 식고 몸이 떨렸다 (고작 15불짜리 배팅이었다). 그래도 보드게임에서도 이렇게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6만을 바라보면서 주사위를 굴려야 하는 이클립스나 황혼의 투쟁보다는 굴린 다음에 무얼 가져갈까 고민을 하게 되는 간츠 숀 클레버가 나에게는 훨씬 재밌었다. 요즘 보드게임의 트렌드도 주사위의 어떤 눈금만을 기대하게 만들기 보다는 미리 확률을 계산해서 선택을 하게 하거나 이미 주사위를 던진 다음에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줘서 나에게 훨씬 잘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