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있는 직장에서는 올해 9월까지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기전에는 직장을 잡아야했다. 물론 지금 직장에서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지만, 굳이 연봉도 낮은 포닥 생활을 더 오래하고 싶지 않아서 매니저에게 올해 3월부터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매니저도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고지식하게 3월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indeed.com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linkedin을 통해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과 같은 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다면서 혹시 아는 사람 없냐는 연락이 왔다. 어? 나 지금 직장을 찾고 있는데? 우리 그룹에서 이 회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길래 혹시 이 회사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 너 지금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어? 난 너 다른 일 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지.’ 응? 내가 뭘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적이 없는데? 나도 내가 뭐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저 사람은 내가 다른거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아는거지? 내가 회사에서 월급 루팡하던게 들킨건가. 어쨌든 다른 회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물어봤더니 거기 갈거면 우리 회사에 남으라면서 뜬금없이 정직원 오퍼가 날라왔다. 고작 3일을 주고 고르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 거절을하고 여전히 3월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뜬금없이 꽤 큰 회사에서 또 연락이 왔다. 무려 senior scientist 자리라면서 전화 인터뷰를 하자는거였다. 게다가 위치도 캠브리지라서 내가 가고 싶은곳이라 잘됐다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했다. 처음에는 senior scientist 자리라고 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정작 전화를 하니까 나는 경력이 짧다면서 scientist 자리를 주겠다는데서 일단 기분이 약간 상했다. 결국 senior scientist가 필요해서 포스팅을 한건데 나를 그 자리에 앉히고 scientist를 주면 하는 일은 비슷하게 하면서 더 싸게 부려먹겠다는거잖아? 게다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 그룹에 대해서 들었는데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일을 하기에는 인원이 좀 적어보였다. 물론 automation이 좀 더 잘되어 있으면 인원이 크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일단 인원이 적다는건 성장하고 있는 그룹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난 research가 좀 하고 싶었는데 그 그룹에 들어가면 빼도박도 못하고 정해진 일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하는 development에 몸을 담아야하는 것 같았다. 지금 있는 그룹도 development를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research도 같이 진행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그렇게 작아서야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없어보였다. 문제는 내가 주제 넘게 저런 이야기들을 인터뷰하면서 열심히 토로를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실수를 깨달아서 ‘저는 작은 그룹도 좋아해요~’라고 어필을 해봤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며칠후에 탈락했다는 통보가 왔다. 내가 지원을 한적도 없고 자기들이 먼저 인터뷰 하자고 했으면서 탈락시키다니 왠지 찝찝했다.
그리고 드디어 3월이 왔다! 그동안 월급루팡 하면서 레쥬메를 열심히 고쳐놨기 때문에 3월 땡치자마자 지원을 했다. 처음 지원한 회사는 캠브리지에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는 indeed.com에서 전혀 검색도 되지 않았었는데, 예전에 우리 그룹으로 자기들 제품 팔려고 발표를 하러 온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세포 엔지니어링을 하는 회사인데 machine learning을 통해서 최적화를 한다고 해서 나 혼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발표를 들었었는데, 우리 그룹에서는 이게 뭔지 이해를 전혀 못해서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회사였다. 그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잡 포스팅이 있었고 마침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을 했다.
회사에서 올라오는 직업 포스팅을 보면 사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게, 대부분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 위주로 사람을 뽑는다. 사실 난 생물학자를 뽑기로 결정했다면 경험보다는 얼마나 깊게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물학 실험은 다 거기서 거기이고, 설사 처음하는거라도 박사급 정도 되는 인력이라면 배우는데 크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뽑아 놓고 처음부터 일하라고 던져주지도 않고 결국은 자기들의 프로토콜에 맞춰서 새로 교육을 시킨다. 그럴거면 차라리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았던 사람이 들어와서 그 분야를 배우면 자기가 원래배웠던 것도 이 분야에 적용을 시켜볼 수도 있고,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깊게 사고한다는건 사실 레쥬메 상이나 인터뷰로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주로 같은 일을 해봤던 사람 위주로 뽑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 스타트업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경험을 원했고, 이런 일을 해봤던 사람을 드물었기 때문에 레쥬메를 올리자마자 폰 인터뷰 요청이 왔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CEO랑 직접 통화를 했는데 이야기가 술술 잘 풀려서 전화 통화하는 와중에 on site 인터뷰 날짜를 바로 잡았다. 이럴수가!! 내가 지금 직장을 잡기 위해서 100군데 지원하고 고작 on site 인터뷰는 지금 회사 하나 받았는데, 이번에는 고작 1개 지원해서 인터뷰 오퍼를 받아냈다. Industry에 한 번 발을 담그면 그 다음부터는 이직이 쉽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건 치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쉬웠다.
그런데 정작 발표를 하러 가자니 거기서부터 난관이었다. 보통 이직을 하게 되면 현재 있는 회사에 알리지 않고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었는데, 나는 현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인터뷰할 회사에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발표 승인을 받아야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터뷰를 한다고 털어놓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는데 변호사들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서 발표 전날에서야 간신히 PPT자료를 승인을 받았다. 몰래 옮겨야 되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발표를 하는거지? 그냥 몰래 발표 하는건가?
On site 인터뷰는 평범했다. 작은 회사다보니 CEO가 자기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나에게 소개를 하고, 내가 1시간 정도 발표를 했다. 그 다음에 점심은 machine learning을 하는 computer scientist들과 같이 먹었는데 배경이 전혀 다르다보니 대화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는 실제로 나와 일을 같이하게 될 생물학자들과 같이 이야기를 한게 끝이었다. 이 회사에서 인상적이었던건 2가지. 현재 있는 건물이 작은 바이오텍들이 모여 있는 인큐베이터인데, 내가 좋아하는 탄산수를 비롯해서 다양한 차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심지어 스낵도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큰 회사에도 이런건 없는데… 인터뷰한 회사의 CEO도 여기 렌트비를 비싸게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건 적극적으로 이용해야한다고 이것저것 먹으라고 막 권해줬다. 또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은 회사라 그런지 한 오피스 공간에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데, 마치 도서관처럼 길다란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거기에 칸막이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앉아 있었다. 앉는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CEO도 주로 로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가게 되면 난 그냥 랩에서 생활해야겠다.
어쨌든 평범한 인터뷰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뜬근없이 2차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지금 있는 큰 회사에서도 인터뷰 한번하고 끝났는데, 여긴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 하면서 투덜대고 있는데, 더 가관이었던건 2차 인터뷰는 같이 앞으로 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brain storming을 하자는거였다. 뭐? 그건 뽑아놓고 해야하는거 아냐? 아이디어만 빼 먹고 안 뽑으려고? 어쨌든 난 직업을 구해야하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런데 말이 brain storming이지, 사실은 대본 없는 압박 면접이었다. 상호간에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미리 준비한 질문을 던져놓고 나 혼자 brain storming을 해야하는거였다. 뭘 질문할지를 모르니 준비도 거의 못해갔고 이건 박사 디펜스보다 힘들었다. 게다가 MIT대학원생 위주로 구성된 회사라서 그런지 일반적인 생물학 전공자들과는 질문내용이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생물학 세미나에서의 질문을 지식에 대한 것을 물어보거나 자기가 궁금한 실험을 해봤는지를 많이 물어보는 반면, 이번 2차 면접은 방법에 대한 질문 위주였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현재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기존의 방법을 어떻게 바꿔서 그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서 주로 고민을 하고 나에게도 그런 질문들을 던져줬다. 이런식으로는 사고를 해본적이 없어서 답을 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들도 대부분의 경우 정답을 모르는 상태로 질문을 하는거라 내가 뭐라고 말하던 반응이 별로 없었다. 최소한 내가 그들의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했다는건 확실했다. 어쟀든 쭉 생물학계에 몸을 담았다가 공학적인 방법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신선하기도 했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도 공학에 조금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 회사에서 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는 순차적으로 레퍼런스를 요구해서 교수님과 현재 매니저의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역시나 나에게는 과분하게도 두 분 모두 나에 대해서 너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인터뷰한 회사의 CEO가 좋은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고 감탄했다는 연락이 왔고, 오늘 전화를 통해서 오퍼를 받았다.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연봉협상을 해야했는데, 현재 회사에서 받은 오퍼가 어느 정도고 이것보다는 많이 받고 싶다니까 거기서 $1,000을 올려줬다(…) 얼마전에 우리 회사에 있는분으로부터 연봉 협상은 먼저 가격을 부른 사람이 패자라고 했는데 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뭐 사실 연봉은 협상하기 힘들거라고 알고 있어서 그 외에 이사 비용이나 거기 이사할 때까지 통근 비용좀 달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그런건 해본적이 없지만 그정도는 해 줄 수 있을거라고 했다. 역시 미국은 뭐든 일단 요구는 다 하고봐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당히 고생했던 첫번째 직장 구하기와 달리 첫번째 정규직을 잡을 때는 고작 1군데 넣어서 오퍼를 받고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