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22 보스턴 모임

텍사스에서 같이 게임하던 지인과 만나서 둘이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 친구도 전략게이머를 상당히 고파했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게임이 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의 밀봉 게임을 같이 돌려준다는 핑계를 대면서 보기로 했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밀봉 게임 중에는 무려 리스보아와 오를레앙 디럭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 해보고 싶었던 게임인데 이럴수가!! 리스보아는 둘 다 처음 돌려본 게임이라서 우리는 재밌는 시도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워낙 게임이 어렵기로 유명한 비딸 라세르다의 작품이니 각자 룰을 읽어와서 둘 모두 숙지를 한 다음 만나서 설명없이 바로 게임에 들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 설명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각자 룰의 이해도도 높고, 둘이 동시에 룰북을 봤으니 에러플도 줄어들고, 어려운 게임의 룰북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둘이 모이니 이런 훌륭한 장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보아는 어려웠다. 사실 룰북 읽을때부터 어려울거라고 감이 왔었다. 어제 룰북 읽으면서 세팅부분에서만 몇 번을 때려쳤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세팅을 다 끝내고 이제 액션을 시작해야하는데, 둘 다 카드를 들고 멍하니 보드판만 바라봤다. 대체 뭘 해야하는거지? 시작할 때의 막막함을 덜기 위해서 시작할 때 주교 타일을 하나 주지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예를 들어서 테라포밍 마스 같은 경우에도 내 손에 들어오는 수 많은 카드 중에서 뭘 골라야 할지 막막하지만, 시작 기업의 특성이 뚜렷해서 일단 기업의 특성에 맞는 카드를 고르면서 천천히 엔진 빌딩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리스보아는 그런 가이드를 전혀 주질 않고 모든걸 공개해놨기 때문에 맨 첫턴부터 모든 액션을 천천히 곱씹어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게다가 많은 액션들이 서로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액션뿐만 아니라 2, 3 액션까지는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해야한다.

리스보아 2인플을 진행하면서 아쉬웠던건, 가게를 지으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중에 배를 싸게 짓거나 공짜로 지을 수 있는게 있는데, 2인플은 배가 총 4대 밖에 없기 때문에 그닥 쓸모가 없는 보너스라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 외에는 딱히 2인플이라서 오는 단점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아쉬웠던 점은 첫플이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influence를 방해하기 위해서 놓는 official들이 크게 의미가 없어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액션을 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에 official을 몰아넣기도 힘들어서 official은 그냥 3개의 노블에 골고루 배치가 됐다. public building도 비슷하게 다음에 나올걸 미리 보여주지만, 내가 public building을 연달아 두 개를 가져가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미리 보여주는게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비딸의 게임은 테마가 정말 잘 녹아들어가 있다는게 장점이었는데, 액션 하나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테마를 즐길 여유따위는 없었다. 물론 이 모든게 게임을 처음해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익숙해지면 액션 연계도 착착하면서 다음 수도 미리 바라보고, 그러면서 게임도 빨리 끝나니 좋은 게임이 될지도 모르겠다.

룰북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건 다른데서는 별로 점수가 없는데, 스토어에서만 어마어마한 점수를 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5점짜리 스토어를 선점하는 전략으로 갔는데 여기서 그나마 점수를 많이 벌어서 수월하게 이길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녹색 주교 타일을 몇 장 들고 오더니 여기서 end game bonus를 왕창 벌어서 내 턱밑까지 쫓아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걸 보면 점수는 꽤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벌 수 있고 각각의 테크간의 밸런스도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게임이 끝나고 든 생각은, end game bonus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게임 중간중간에 얻는 점수에도 신경을 써야하지만, end game bonus를 누가 얻는가에 대한 레이싱 게임 비슷하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 익숙해지고 점수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시작하면 좀 더 치열한 견제가 벌어질 것 같다.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안해본 사람과 다시 해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룰을 직접 읽어온 두 사람도 헤맸는데, 처음 게임해 본 사람한테 가르쳐주고 게임을 하면 맨붕이 오지 않을까?

다음은 오를레앙 디럭스! 예상했던대로 수려한 미플들이 나를 맞이했지만, 미플을 쓰기가 귀찮은 두 명의 덕후는 그냥 타일로 게임을 진행했다(…) 사실 난 아트웍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상관 없었는데, 예쁜 게임을 모으고 있는 친구가 그냥 타일로 게임을 해서 좀 놀랐다. 백빌딩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이런 시스템을 접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시스템 자체는 훌륭했지만 첫 플레이여서 그런지 내가 무슨 일꾼이 필요한지 감이 잘 없어서, 그냥 무심하게 일꾼을 뽑고는 나오는대로 열심히 배치를 했다. 이 게임에서 좀 더 중요한건 건물인 것 같았는데, 처음이라 무슨 건물이 있는지 다 파악이 안되니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2인플에서 오는 단점으로 죽으러(?) 보내는 일꾼의 숫자가 턱없이 적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보너스 타일은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첫판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좀 더 익숙해져서 내 백 안의 타일을 카운팅도 좀 하고 모든 건물도 익숙해져서 어떤 콤보로 점수를 낼지 생각하면서 전략적으로 다시 해보고 싶은 게임이다.

이후에 브라스도 한판 했지만, 설명을 듣는 내내 무슨 게임인지 전혀 감도 오지 않고,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뭘 해야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맨붕에 빠지면서 게임을 했다. 슬슬 내년에 오는 내 킥스판 브라스가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