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09 보스턴 보드게임 모임

인터넷으로 보드게임 할 사람을 꾸준히 모으고 있는데, 이번에 글을 올렸더니 저번과는 달리 몇명에게서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중에 한명은 보드게임 꽤 좋아한다고 해서 만나보기로 만나서 2인플이라도 돌려보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무슨 게임해봤는지 물어봤는데 아쉽게도 해 본 게임은 뱅이나 타뷸라의 늑대(이건 나도 못해보긴했다) 정도만 해보셨고, 나한테 루미큐브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루미큐브가 재미가 없다는건 아니지만, 이건 아흔살 가까이 된 우리 할머니가 하시는 게임인데…

일단은 보드게임 카페에서 만나서 루미큐브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루미큐브는 없고 난 듣도보도 못한 루미큐브 다이스 버전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제끼고 Fugitive가 보이길래 일단 무작정 들이밀었다. 그분은 이상하게 루미큐브에 집착을 보이셔서 내가 게임을 고르는 동안 직원분에게 루미큐브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내가 아까 확인했던 루미큐브 다이스를 기어이 가지고 오셨다. 당장은 내가 설명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Fugitive를 하자고 했다. 첫판이라 추리에 자신이 없으셔서 상대방분이 도둑을 하시겠다고 했다. 아내랑할 때 도둑을 꽤 많이 잡아봤던지라 자신감 있게 진행했다. 딱히 블러핑을 하시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추리가 다 빗나가서 처음하시는 분에게 내리 두판을 다 지고 말았다.

루미큐브를 원하셨으니, 다음 게임으로는 급하게 룰을 읽고는 루미큐브 다이스를 돌려봤다. 내가 다이스 게임을 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건 루미큐브의 느낌을 전혀 주질 못했다. 루미큐브는 기존에 깔려 있는 수 많은 타일들을 어떻게든 조합해서 최대한 타일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데 재미가 있는데, 고작 주사위 9개만을 가지고 조합을 하자니 운에 의존하는 부분이 너무 컸다. 그나마 주사위를 3번씩 굴리게 해주지만, 어떤 주사위에 무슨 눈금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무슨 주사위를 킵하고 무엇을 다시 굴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상대방 분이 게임하면서 반응이 별로 없으셔서 이 게임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루미큐브 본판은 이런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게임을 마쳤다.

다음 게임은 텍사스 후배들이 강추한 킹도미노. 7원더스 때도 느꼈지만 프랑스 작가들이 만든 게임의 영어 룰북 번역은 정말 엉망이다. 영어 쓰는 사람이 검수 안해주나? 이렇게 간단한 게임인데, 룰북 읽다가 이해가 안되서 때려칠뻔했다. 나를 이해시켜주느라고 게임 추천해준 후배들이 고생을 했다. 게임은 정말정말 단순했다. 여전히 상대방 분은 반응이 별로 없으셔서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판만에 5×5를 완성하는걸 보고 놀랐다. 게임도 그분 승리. 다음 게임은 산토리니. 뱅 외에는 보드게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초보분을 두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게임만 잔뜩 꺼내들었다. 뭐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게임성이 검증된 게임들이니 괜찮겠지. 컴포가 예쁜 추상전략 게임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게임을 진행해보니 생각보다 미리 수를 많이 읽어야하는 게임이라서 놀랐다. 사실 추상전략 게임이 다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움직인 다음 건설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건물이 어디 올라갈지 외에도 상대방의 일꾼의 움직임을 건물이나 내 일꾼으로 제한하는 것도 중요했다. 킹도미노에서도 대충 눈치챘지만, 산토리니도 두 판을 해보면서 게임을 파악하시더니 3번째 게임에서는 가볍게 나를 누르셨다.

해본 게임이 거의 없는 것치고는 게임 이해하는 속도나 전략을 짜는 능력이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음 게임은 무모하게 테라포밍 마스를 골랐다. 초보자들에게 전략게임은 내밀기는 쉽지 않지만, 이 게임은 룰이 상당히 직관적이고 설명할 것도 별로 없어서 장시간의 플레잉타임 견딜 수 있으면 초보자들에게도 내밀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게임 이해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나는 가끔 놓쳤던 숲타일 놓은 다음 산소 올리고 테라포밍 점수 올리기를 한번도 빼놓지 않고 다 올리셨다. 물론 첫판이라 신경쓸게 너무 많아서 마일스톤하고 어워드까지는 신경을 못쓰셨지만 4시간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시는 것을 보고는 엄청 놀랐다. 오히려 내가 막판에 지쳐서 빨리 좀 게임을 끝내고 싶었지만, hellion 기업을 가지신 상대방분이 열을 안 올리고 그걸 다 돈으로 쓰시니 게임이 좀 질질 끌렸다. 으으 역시 테포마 2인플은 너무 오래 걸린다 ㅠ.ㅠ 아내랑 하려고 나도 하나 샀는데, 아내가 안해주면 어쩌지.

그래도 저번 회사 동료분 이후에 이번에도 초보자분의 보드게임 입문은 대성공이었다. 2인플로만 무려 7시간을 했는데도 지치지도 않고 좋아하시면서 보드게임은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셨다. 나중에 카톡으로도 테포마 재밌었다고 이런 게임 소개시켜 달라고 하셨다. 아싸! 보스턴에서도 천천히 모임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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