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사추세츠 지역으로 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보드게임 모임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학생이 아닌 성인들로 구성된 한인 보드게임 모임을 찾는건 불가능했고, 직접 모집글도 올려봤지만 반응이 미비했다. 그 와중에 지인의 소개로 하버드 한인 학생들로 구성된 보드게임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아재가 염치 없지만 철판을 깔고 참가하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게임 구성을 보니 주로 파티 게임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 핑계로 파티게임 라인업을 확충한다는 핑계로 몇개 사들고 갔다.
캠브릿지 방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모임 공간은 상당히 크고, 놀기 좋게 테이블도 무려 3개씩이나 배치가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건 War of the ring! 아내랑 해보고 싶었으나 주사위가 들어간 게임이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게임인데, 바로 눈에 딱 보여서 너무 반가웠다. 놀랍게도 아직 노플. 내가 룰북 읽고 설명도 다 해줄테니 같이하게 해달라고 만나자마자 열심히 꼬리를 쳤다. 조만간 할 수 있겠지? 슬슬 사람들이 오고 기억은 거의 못했지만 인사도 한명씩 나누고 게임을 시작했다. 한 테이블은 Incan gold가 돌아가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sushi go파티를 돌리기로 했다. 모임장님이 내가 가지고 온 게임을 돌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긴 하셨는데, 나는 이방인이다보니 내가 하려는 테이블에 사람을 모으기가 쉽지가 않았다. 간신히 사람들을 모아서 시타델을 진행했는데, 옆 테이블에서 Incan gold를 하면서 빵빵 터지고 있으니, 우리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고 게임이 지루해지는게 보였다. 시타델은 상대방 카드를 예측하고 그게 제대로 들어맞거나 아니면 Warlord로 적극적으로 견제하면서 진행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Incan gold처럼 빵빵터지면서 게임이 진행되진 않는다. 난 사실 약간 당황해서 어떻게든 게임을 빨리 끝내고 테이블을 다시 합쳤으면 했으나, 어찌된게 사람이 한명 더 늘어서 한판을 더 하게됐다. 여전히 게임은 평범했다. 이 게임은 아무 케릭터나 고르면 게임이 잘 안되고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추리를 할 때 좀 더 재밌어지는 것 같다. 룰은 간단하지만 재밌게 즐기려면 그닥 쉽지는 않은 게임.
다음으로는 거의 실패할 일이 없는 달무티를 꺼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한 분이 일찍 가셔야 한다고 해서 짧게 끝낼 수 있는 게임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게 이거 밖에 없어서 고른건데, 다행히 달무티는 그나마 반응을 좀 보였다. 게다가 내가 왕을 잡고 있는데 노예가 반란을 일으켜서 빵 터졌다. 그 이후로 사람을 늘려서 달무티를 몇 판 더 한 후에 몇몇 사람들은 집에 가고 남은 사람들은 마피아를 하기 위해 모였다.
사실 난 마피아를 그닥 선호하진 않는다. 거짓말도 잘 못하고, 딱히 단서가 없는데 추리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게임이 신선했던건 ultimate werewolf처럼 케릭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심지어 진행자들이 추가로 케릭터를 만들어서 진행을 했다는 점이다. 나보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 훨씬 뛰어나 보여서 존경스러웠다.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 일찍 죽거나, 엉뚱하게 추리를 했던 두 판의 마피아가 지나가고 세번째 판에서는 하루밤이 지나자마자 늑대편이 인간편보다 많아져서 내가 그걸 바로 지적해서 게임이 끝나버렸다. 처음 온 사람이라고 부추겨 주는건지 훌륭한 논리였다고 칭찬해줬는데, 사실은 그냥 숫자가 더 많다는걸 지적했을뿐이다. 늑대들은 누가 늑대인지 아니까 쉽게 추리가 가능하고, 인간편은 누가 늑대인지 모르니 절대 추리가 안되서 내가 뭔가 있어 보였을 뿐이다.
다 끝나보니 무려 새벽 3시. 아재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모르겠지만, 나름 첫 모임치고는 나쁘지 않게 진행됐던 것 같다.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더 소규모 인원으로 좀 더 전략적인 게임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