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나이트 2인플 후기

메이지 나이트 확장은 한 3, 4년전에 샀지만 계속 룰북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해서 제대로 돌려보지 못하고 있다가 저번 주 주말에 작정하고 룰북을 읽고 플레이를 했다. 가장 기본적인 볼케르 장군의 귀환 시나리오를 했는데, 도시 발견 미션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다가 볼케르 장군이 먼저 도시를 발견하고 나니 우리 먼저 점령할 방법이 없어서 게임이 금방 끝나버렸다. 어쨌든 볼케르 장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룰은 대충 파악해서 그 다음에 다시 시도를 해봤다.

지난번의 패배를 거울삼아서 이번에는 마지막 코어타일을 우리가 잽싸게 열어서 볼케르 장군보다 도시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어 타일이 그렇듯이 도시로 들어가는 것조차 난관이 많았는데, 내가 가는 길에는 용이 가로막고 있었고, 아내는 호수에 막혀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를 쓰고 간신히 용을 잡고 도시 앞에 도착하고 나니, 아내는 호수를 얼려서 길을 만들고는 따라 왔다. 사실 나도 상처를 너무 많이 입어서 도시를 한방에 점령할 수는 없었고, 그냥 아내를 호수 건너편으로 오게 만드는게 목적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전투에서 지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하는거였다. 뒤에는 호수가 있어서 돌아갈 수 없으면 다른곳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패널티만 더 입고 더 뒤로 후퇴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타일은 이미 깔려 있고 그 앞은 호수로 막혀 있어서 아내는 도시로 건너올 방법이 없는데, 맵 타일이 다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룰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긱을 뒤지다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기본 타일을 하나 더 깔고 그곳을 통해 아내가 넘어 왔다. 그래서 협공으로 도시는 간신히 함락했지만, 점령한 도시가 하필이면 흰색도시였다. 우리 둘은 오는 중간중간에 메이지 타워와 킵을 모두 점령하면서 왔기 때문에 이미 평판은 바닥을 찍고 있어서 도시에서 아무런 용병도 고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 점령한 도시의 혜택은 하나도 못 받고 볼케르 장군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진하고 있는데, 주사위 운이 지독히도 없어서 밤인데 주사위는 모두 골드라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 둘은 성 안에 갇혀서 카드만 줄창버리며 빨리 낮이 오기를 기도했다.

그러는 와중에 볼케르 장군이 도착했고, 성벽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부수고 우리 앞으로 도달했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날이 밝았고, 재정비를 마친 우리는 성벽 밖으로 나가 볼케르 장군을 맞이했다. 처음 맞이하는 볼케르 장군은 정말 무시무시한 군대를 이끌고 있었고, 내가 싸워야 할 적들은 하필이면 죄다 마비 능력을 갖고 있어서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싸울 방법이 나질 않았다. 다행히 내가 미리 고용해뒀던 영웅이 강력한 Cold fire block으로 볼케르 장군의 군대를 막아주고 그 사이에 나는 용 한마리를 처치해서 간신히 볼케르 장군을 후퇴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의 메이지 나이트는 무적이라 볼케르 장군이 다시 쳐들어올 때까지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우리 둘 다 손에 강력한 아티팩트를 들고 있어서 싸워볼만했다. 보통 경쟁 모드에서는 아트팩트가 점수라서 아까워서 부수질 않는데, 협동모드에는 점수를 따질 필요가 없으니 아트팩트를 아낌없이 깨부수고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서 볼케르 장군을 간신히 무찌를 수 있었다. 아무리 메이지 나이트가 무적이라지만 혼자 몸빵을 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처 카드가 30장이 넘었고 우리는 성벽에 주저 앉아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나리오를 마쳤다. 가장 기본 레벨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도저히 볼케르 장군의 레벨을 올려서는 시도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1일 1테포마

내가 최근에 보드게임을 너무 많이 사서 아내가 지쳤는지, 한 달에 한 게임만 새로 배우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래서 매달 할 게임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는데, 1월에는 아를의 평원으로 시작했다. 보톡스에서 극찬을 해서 사실 기대를 많이하고 있었는데, 조금은 심심한 느낌이었다. 아그리콜라의 다양한 카드 조합과는 달리 모든 리플레이성을 몇 개의 건물에만 의존하는데 건물의 갯수가 그다지 많지 않고, 다른 건물이 나왔다고 게임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는 느낌도 못 받았다. 2월의 게임은 트라야누스! 이것도 보톡스의 에퀴녹스님의 추천으로 샀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다. 뉴욕에서 에퀴녹스님을 만나러 갔을 때 가지고 가서 엄청 재밌게 해서 기대를 잔뜩 안고 아내한테 설명해줬다. 안타깝게도 전형적인 슈테판 펠트의 게임답게 테마가 전혀 안 살아 있어서 아내가 그닥 재밌어하진 않았다. 1월, 2월 게임 모두 실패 후 3월의 게임은 무얼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테라포밍 마스를 골랐다. 사실 테포마를 계속 미뤄뒀던대는 이유가 있었다. 아내가 요즘은 아주 긴 게임은 좀 힘들어했는데, 테포마는 사람이 적어지면 오히려 게임이 약간 길어지는 이상한 게임이라서 선뜻 들이밀기가 어려웠다. 그 이유 때문에 2인플을 추천하지 않아서 쉽게 들이밀기도 어려웠지만 다른 게임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서 일단 시작해봤다.

다행히도 대성공! 아내가 천문학을 좋아하기도 했고, 카드의 능력들이 테마가 잘 살아 있고 (난 거의 안 읽지만) 아내는 flavor text까지 다 읽으면서 엄청 좋아했다. 첫판 이후에 아내가 홀딱 반해서 거의 매일 밤 한 게임씩 했다. 초반에 몇 게임을 내리 이기더니 아내가 기고만장해져서 ‘이 게임을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게임이야!’ 라면서 도발을 걸어왔다. 으으, 이대로 질 수는 없지! 왜 이렇게 많이 질까 고민을 하다가 얻은 결론은 카드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린다는거였다. 그래서 당장 깔 수 있는 카드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절제하면서 카드를 샀더니 부쩍 승률이 올라서 아내를 상당히 앞섰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한테 확장을 사라는 명도 받아서 비너스 넥스트까지 바로 추가하고 1일 1테포마를 계속 했다. 원래 비너스 넥스트를 추가하게 되면 금성까지 테라 포밍을 해야해서 게임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매 라운드마다 선 플레이어가 1가지 parameter를 그냥 올리게 되어 있는데, 아내는 그렇게 하면 게임을 하다마는 것 같다면서 그 룰도 없이 풀타임으로 게임을 하자고 했다. 분명 오래 걸리는걸 힘들어했었는데…

아내가 테포마를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승률이 앞서서 아내를 자극해버린게 문제였다. 난 다른 게임도 다양하게 즐기고 싶었으나 매일밤 테포마 승부를 걸어와서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치도록 테포마만 돌렸다. 이제 4월이 와서 4월의 게임을 시작해야하는데 테포마보다 재미가 없으면 안하겠다고 으름장을 놔서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테마성이 이렇게 잘 살아 있으면서 게임성도 좋은 게임은 찾기가 쉽지 않은데…

171209 보스턴 보드게임 모임

인터넷으로 보드게임 할 사람을 꾸준히 모으고 있는데, 이번에 글을 올렸더니 저번과는 달리 몇명에게서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중에 한명은 보드게임 꽤 좋아한다고 해서 만나보기로 만나서 2인플이라도 돌려보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무슨 게임해봤는지 물어봤는데 아쉽게도 해 본 게임은 뱅이나 타뷸라의 늑대(이건 나도 못해보긴했다) 정도만 해보셨고, 나한테 루미큐브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루미큐브가 재미가 없다는건 아니지만, 이건 아흔살 가까이 된 우리 할머니가 하시는 게임인데…

일단은 보드게임 카페에서 만나서 루미큐브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루미큐브는 없고 난 듣도보도 못한 루미큐브 다이스 버전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제끼고 Fugitive가 보이길래 일단 무작정 들이밀었다. 그분은 이상하게 루미큐브에 집착을 보이셔서 내가 게임을 고르는 동안 직원분에게 루미큐브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내가 아까 확인했던 루미큐브 다이스를 기어이 가지고 오셨다. 당장은 내가 설명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Fugitive를 하자고 했다. 첫판이라 추리에 자신이 없으셔서 상대방분이 도둑을 하시겠다고 했다. 아내랑할 때 도둑을 꽤 많이 잡아봤던지라 자신감 있게 진행했다. 딱히 블러핑을 하시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추리가 다 빗나가서 처음하시는 분에게 내리 두판을 다 지고 말았다.

루미큐브를 원하셨으니, 다음 게임으로는 급하게 룰을 읽고는 루미큐브 다이스를 돌려봤다. 내가 다이스 게임을 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건 루미큐브의 느낌을 전혀 주질 못했다. 루미큐브는 기존에 깔려 있는 수 많은 타일들을 어떻게든 조합해서 최대한 타일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데 재미가 있는데, 고작 주사위 9개만을 가지고 조합을 하자니 운에 의존하는 부분이 너무 컸다. 그나마 주사위를 3번씩 굴리게 해주지만, 어떤 주사위에 무슨 눈금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무슨 주사위를 킵하고 무엇을 다시 굴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상대방 분이 게임하면서 반응이 별로 없으셔서 이 게임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루미큐브 본판은 이런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게임을 마쳤다.

다음 게임은 텍사스 후배들이 강추한 킹도미노. 7원더스 때도 느꼈지만 프랑스 작가들이 만든 게임의 영어 룰북 번역은 정말 엉망이다. 영어 쓰는 사람이 검수 안해주나? 이렇게 간단한 게임인데, 룰북 읽다가 이해가 안되서 때려칠뻔했다. 나를 이해시켜주느라고 게임 추천해준 후배들이 고생을 했다. 게임은 정말정말 단순했다. 여전히 상대방 분은 반응이 별로 없으셔서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판만에 5×5를 완성하는걸 보고 놀랐다. 게임도 그분 승리. 다음 게임은 산토리니. 뱅 외에는 보드게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초보분을 두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게임만 잔뜩 꺼내들었다. 뭐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게임성이 검증된 게임들이니 괜찮겠지. 컴포가 예쁜 추상전략 게임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게임을 진행해보니 생각보다 미리 수를 많이 읽어야하는 게임이라서 놀랐다. 사실 추상전략 게임이 다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움직인 다음 건설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건물이 어디 올라갈지 외에도 상대방의 일꾼의 움직임을 건물이나 내 일꾼으로 제한하는 것도 중요했다. 킹도미노에서도 대충 눈치챘지만, 산토리니도 두 판을 해보면서 게임을 파악하시더니 3번째 게임에서는 가볍게 나를 누르셨다.

해본 게임이 거의 없는 것치고는 게임 이해하는 속도나 전략을 짜는 능력이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음 게임은 무모하게 테라포밍 마스를 골랐다. 초보자들에게 전략게임은 내밀기는 쉽지 않지만, 이 게임은 룰이 상당히 직관적이고 설명할 것도 별로 없어서 장시간의 플레잉타임 견딜 수 있으면 초보자들에게도 내밀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게임 이해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나는 가끔 놓쳤던 숲타일 놓은 다음 산소 올리고 테라포밍 점수 올리기를 한번도 빼놓지 않고 다 올리셨다. 물론 첫판이라 신경쓸게 너무 많아서 마일스톤하고 어워드까지는 신경을 못쓰셨지만 4시간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시는 것을 보고는 엄청 놀랐다. 오히려 내가 막판에 지쳐서 빨리 좀 게임을 끝내고 싶었지만, hellion 기업을 가지신 상대방분이 열을 안 올리고 그걸 다 돈으로 쓰시니 게임이 좀 질질 끌렸다. 으으 역시 테포마 2인플은 너무 오래 걸린다 ㅠ.ㅠ 아내랑 하려고 나도 하나 샀는데, 아내가 안해주면 어쩌지.

그래도 저번 회사 동료분 이후에 이번에도 초보자분의 보드게임 입문은 대성공이었다. 2인플로만 무려 7시간을 했는데도 지치지도 않고 좋아하시면서 보드게임은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셨다. 나중에 카톡으로도 테포마 재밌었다고 이런 게임 소개시켜 달라고 하셨다. 아싸! 보스턴에서도 천천히 모임을 만들어 보자.

171203 미국인 보드게임 모임

보스턴에서 처음 갔었던 미국인 보드게임 모임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집에서 너무 할일이 없어서 빈둥대다가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약간은 인종차별을 받는 것 같았지만, 얼굴이 익숙해지고 게임을 좋아한다는걸 알면 그것도 덜하리라 믿으며.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전에 게임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몇명 보여서 인사를 했는데, 나를 별로 알아보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런곳에서 동양인 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날 기억 못하나? 뭐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남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이 기억되고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기억 좀 못해도 상관은 없다. 전에도 느낀거지만 여기 사람들은 게임 고르는데 참 우유부단하다. 사실 누가 몇시에 올지 전혀 모르니 그러는 것 같지만. 어쨌든 사람이 더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Stroop이라는 간단한 카드게임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게임에 대한 인상은,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Set정도? 실시간 게임은 아주 예전에 할리갈리와 Pit 이후로 처음 해보는데 단순히 순발력만 좋으면 되는게 아니라 언어를 인지하는 능력도 탁월해야해서 이전에 해본 실시간 게임들보다 훨씬 재밌었다. Set의 단점은 게임이 조용조용 진행된다는 점인데, 이건 스피드 게임이라 좀 더 파티스럽게 진행이 됐다. 단점이라면 계속 카드를 내다보니까 중간에 잘못내도 확인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첫 게임을 끝내고 다음 게임을 고르는데, 다들 어영부영하고 있길래 Isle of Skye를 하자고 제안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들. 그래도 이전에 기차섬을 내밀었을 때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Isle of Skye는 플레이라도 해주니 그나마 다행인건가. 문제는 내가 제안을 하는 바람에 내가 설명을 해야 했다는 것 ㅠ.ㅠ 설명자체는 잘 할 자신 있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건 미리 준비를 했을 때고 한글로 설명할 때만 그랬다. 게임 자체는 간단했지만 영어로 설명하려니 단어를 제대로 몰라서 우왕좌왕하며 간신히 게임을 시작했다. 다행히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라서 내 엉망인 설명으로도 게임 자체는 금방이해하고 플레이를 했다. 아뿔싸! 게임하다 중간에 스코어 보드판을 잘못 썼다는걸 깨달았다. 이러면 선이 공평하게 돌아가질 않는데 ㅠ.ㅠ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아서(전 모임의 에러플을 생각하면 이건 양호하긴 하다), 적당히 게임은 진행했는데 여전히 뜨뜻 미지근한 반응으로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난 사실 보드게임을 하면서도 시스템에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데서 가장 큰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게임에서는 내가 이기고 있어도 그닥 즐겁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점수를 확인하는데, 누가 이겼는지도 확인안하고 그냥 자기 점수만 다 내고는 먼저 일어나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이건 좀 충격적인걸.

Isle of Skye가 끝나고 몇 명이 더 왔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다음 게임을 고를 줄 알았는데, 모임 주관자가 멀뚱히 새 게임만 구경하고 있었고, 새로 온 사람 중에 할머니 한명이 내 옆에 앉더니 자꾸 나보고 2인플 푸에르토 리코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모임 주관자를 버리고 게임을 하기에는 약간 마음이 쓰여서 좀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게임할 생각을 안해서 물어보러 갔더니 누군가 올 수도 있다고 기다리는 중이란다. 이미 이 사람들한테서 그런걸 미리 말해주기를 기대하는건 무리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같이 멀뚱히 기다리다가 기다리던 사람이 안와서 결국 같이 게임을 하기로 했다. 5인플 게임을 골라야 하는데, 여전히 무슨 게임을 할지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만 하다가 결국 2:3으로 갈라지잔다. 난 게임하러 왔지 빈둥대러 온게 아니기 때문에 할머니를 붙잡고 푸에르토 리코 2인플을 하기로 했다. 푸에르토 리코 특유의 귀찮은 세팅이 끝난 후 게임을 시작했는데, 우와! 이 할머니 게임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그래도 나는 옥수수를 꾸준히 선적하면서 점수를 계속 벌고 있었고 할머니는 하나도 못 싣고 있어서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small market, large market, office로 콤보를 꾸리더니 고작 indigo하나씩을 팔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모아서는 대형 건물을 여러 개 사들여서 순식간에 게임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래도 건물만 짓다보면 대형건물에서 주는 추가 보너스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길 줄 알았으나 3점차이로 패배 ㅠ.ㅠ 푸에르토 리코 2인플 스피드게임으로 하는 할머니라니. 미국에서도 보드게임은 비디오게임에 비해서는 마이너 장르일텐데도 이런 할머니가 있다니 신기했다. 그 다음 게임으로 할머니는 워터딥의 군주 2인플, 아그리콜라 패밀리 룰 2인플을 제안했으나 둘 다 내가 하고 싶지가 않아서 버건디의 성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나름 룰 설명 잘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은 끝까지 굴욕의 룰설명이었다. 일단 영어로 하는 설명이라서 막힌걸 제외하더라고, 설명 순서도 엉망이고 빼 먹은 것도 많고 할머니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채로 게임을 진행해야했다. 내가 룰 설명이 엉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푸에르토 리코를 그렇게 빨리 하던 할머니가 계속 장고를 하시고 똑같은 룰도 무척 여러번씩 반복해야했다. 그러다가 매장 문을 닫는 시간이 다가와서 그만 접었는데, 중간에 게임을 접은게 다행으로 느껴지는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할 게임을 미리 알아놓고 룰북을 철저히 숙지하고 설명하는 시뮬레이션도 머리에 그려봐서 그런지, 내가 아무리 잘 알고 있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미리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의 설명은 정말 어렵다는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영어로 설명을 자주하면 영어 실력이 조금은 늘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해보면서 여전히 실망스러웠던 미국인 모임을 나왔다.

171202 직장 동료와 보드게임

목마른자가 우물을 판다고 보스턴 지역으로 와서 같이 보드게임을 할 사람이 없다보니 만나는 한국 사람들마다 내 취미가 보드게임이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혹시 같이 해볼 마음이 있는지 살짝 떠보고 다닌다. 일단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 없는 것도 문제지만,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결혼 하신분들이라서 같이 취미 생활을 즐기자고 권유를 하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은 만나기가 힘들고. 그나마 하버드 모임에 기대를 했으나 내가 모임장이 아니니 마음껏 모임을 열 수가 없어서 보드게임에 대한 갈망을 풀 길이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회사 우리 부서에 한국분이 들어와서 슬쩍 보드게임을 해보겠냐고 떠봤다. 여자분하고 둘이서 만나서 게임하는게 약간 마음에 걸려서 다른 사람을 좀 더 섭외하려고 했으나 실패. 다행히 둘이서 게임하는데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예전에 알아봐두었던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이 카페는 입장료로 1인당 10불씩을 받아서 조금 비싼감이 있지만 어차피 둘 다 돈을 버는 입장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초보자용 2인 게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카페의 게임 목록이 온라인에 없어서 무슨 게임을 할지 미리 준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보드게임을 접해보는 사람일수록 할만한 게임 리스트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룰숙지를 철저히해서 지루하지 않게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미리 준비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나마 있을만한 게임인 로스트 시티랑 세븐 원더스 듀얼, 하나미코지 룰만 급하게 읽고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로스트 시티가 한눈에 띄어서 얼른 꺼냈으나, 으악!! 이게 뭐야? 카드게임이 아니라 보드게임이잖아? 난 로스트 시티 보드게임은 그냥 로스트 시티를 4인플로 하는 게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많은게 변한 게임이라서, 보드게임 처음 접하는 사람을 눈 앞에두고는 급하게 룰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당황하면 룰이 잘 안 들어오니 대충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정도로만 룰 숙지를 하고 게임을 했는데 은근히 내 속을 뒤집으면서 약을 올리면서 게임을 꽤 잘 따라오고 재미도 있어했다. 그리고 보드게이머들이 입문시키려는 초보자들에게 제일 듣고 싶어하는 마법의 문장이 나왔다. ‘한판 더!’ 정리를 하는동안 부랴부랴 룰북을 다시 읽었더니, 역시나, 에러플 투성이었다 ㅠ.ㅠ 에러플을 다시 바로잡아주고 게임을 하려고 하자 다시 복장을 뒤집는 한마디 ‘초보자 이기려고 이상한 룰로 한거 아니죠?’ 의외로 승부욕이 강한 아가씨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 룰을 바로 잡고 나서는 내가 연달아 두 판을 진 것이다 ㅠ.ㅠ 변명을 해보자면 로스트 시티 카드게임처럼 몇 개의 지역에만 집중해서 게임을 진행했는데, 알고보니까 보드게임 버전은 카드가 훨씬 많아서 (같은 색깔 같은 숫자 카드 2장씩. 오름차순뿐만 아니라 같은 숫자 카드도 내려 놓을 수 있다) 일단 모든 지역을 다 탐사를 하긴 해야했던 것이다. 내가 져서 그런지 다시 마법의 문장이 나왔다 ‘이 게임 하나쯤 사고 싶은데요?’

두 번째 게임으로는 동생 장모님에게도 성공했던 스플렌더! 이 카페에는 스플렌더가 2개가 있었는데, 그나마 게임이 멀쩡한건 칩이 플라스틱이라 손맛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카드가 낡을대로 낡은 예전 버전게임을 꺼냈다. 다행히 낡은 카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게임을 했는데 내가 내리 두판을 이겨서 아가씨의 승부욕을 자극해버렸다. 2판으로 감을 잡아서 이제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해서 2판을 더해서 2:2를 만들고는 승부를 내야한다고 마지막 한판 더! 앉은 자리에서 스플랜더만 5판을 했다. 그래도 동생이랑 할때처럼 한 판이 오래는 안 걸려서 다행이다. 스플렌더도 대성공!

슬슬 마무리 게임을 찾아야했다. 귀여운 컴포가 항상 먹힌다는 타케노코로 마무리. 역시나 컴포도 성공적이었고, 스플렌더와는 다르게 게임 상태가 매우 깨끗해서 게임하기 좋았다. 그런데 컴포는 깨끗한데 비해 게임에 포함된 주사위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게임을 안했을지도… 대신 일반 주사위가 하나 들어있어서 그걸로 대체해서 게임을 진행했다. 이미 게임을 어느 정도 잘한다는건 앞의 게임들에서 다 보여줬기 때문에 치사하지만 블러핑도 해가면서 미션 카드를 최대한 안내려놓으면서 엄살을 떨면서 게임을 했다. 물론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미션 카드 안 내려놔도 된다고는 알려줬다. 엄살을 떨긴 했지만, 아가씨가 미션 카드를 무섭게 내려놔서 실제로 지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주사위의 신이 도와주셔서 간신히 미션을 완수하고 게임을 끝냈다.

약 4시간 반정도 게임을 했는데 지친 기색도 없이 집중도 잘하고 게임을 재밌게 즐겨서 나도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쉬운 게임만 했지만 이해도도 높고 적극적으로 견제도 하려고 하고 무엇보다 게임이 재밌다고 구하려고까지했으니 이정도면 대성공이다. 다음에 또 모임이 있다면 초대해 달라고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무얼 준비해 가야하려나?

1711 2박3일 뉴욕 보드게임 모임(2)

뉴욕까지 왔으니 놀러 나갈까도 생각했으나 날도 많이 추웠고, 어차피 게임하러 왔는데 게임이나 실컷 하자고 해서 아침을 적당히 해결하고는 바로 게임 모드! 아침에는 가볍게(?) 아이패드 게임부터 시작했다. 첫 게임은 쓰루 디 에이지스. 역시 앱이 편하긴한데, 보톡스 가이오트님의 표현을 빌려 ‘빠꼬미?’ 들과 게임을 하다보니 무참하게 말렸다. 다음판으로는 아이패드 아그리콜라. 아그리콜라는 아내랑 수십판을 돌려서 자신이 있었으나, 처음보는 앱 인터페이스에 정신이 없고 아내랑 둘이서 할 때는 견제 생각없이 하다가 사방에서 견제 들어오고 선을 무수히 뺏어가니 구걸카드와 함께 처참하게 패배를 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모드. 보유는 하고 있지만 해본적이 없다는 Isle of skye로 시작했는데 어제의 Isle of trains와 함께 두 분 다 못해본 게임이었지만 재밌게 즐기시는 것 같아서 보스턴에서부터 가지고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보드게이머는 처음 소개시켜준 게임 재밌게 하는걸 지켜볼 때가 가장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여전히 게임은 동행 여성분이 1등. 난 독보적인 꼴찌. Isle of skye는 타일들이 삐뚤빼뚤 깔리기 마련인데, 엄청 깔끔하게 직사각형으로 영지(?)를 구성하셔서 놀랐다.

오후에도 여전히 게임 삼매경. 오후에는 에퀴녹스님이 추천해주셔서 사게 된 Trajan과 Tikal을 돌렸다. 난 에퀴녹스님이 추천해주셔서 게임 설명도 해주실줄 알았는데, 내가 룰북 읽어봤다고 하니까 나에게 설명을 일임하셨다. 사실 룰 설명은 익숙하지만, 난 룰 설명을 내가 해야하면 좀 더 룰북을 꼼꼼하게 읽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그려보는데 Trajan은 그냥 게임 시스템을 파악하려고 적당히 읽은거라 룰 설명을 맡기셨을 때 좀 당황했다. 그래도 어차피 게임을 해보셨던 분들이니, 적당히 룰북 읽어가면서 설명하는데 무리없이 이해를 하셔서 다행이었다. 역시나 게임은 꼴찌를 했지만, 이 게임 진짜 재밌다! 만칼라 시스템 게임으로는 오부족을 해 본게 전부인데, 오부족은 모두가 보드를 공유해서 내 마음대로 미플을 옮기기가 어려웠던 반면에 Trajan은 내 미플은 나만 사용하기 때문에 2, 3수 정도는 미리 계획을 하고 미플을 옮겨서 내가 원하는 액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펠트 게임답게 다양한 곳에서 점수가 나와서 원하는 테크트리를 타는 재미도 있다. 주사위에 재미들리기 전의 펠트 게임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느낌상 2인플도 재밌을 것 같아서, 나중에 아내랑 플레이도 기대가 된다.

다음 게임은 티칼. 이건 룰북을 끝까지 못 읽었는데 다행이 에퀴녹스님이 설명해주셨다. 사실 처음에는 제 갈길 알아서 가는듯해서 약간 게임이 밋밋했다. 거기다가 타일 뽑기 운이 좀 있어서 나만 유물 타일이 안나오는 바람에 처음에 점수가 엄청 뒤쳐졌었다. 이 게임의 묘미는 후반부. 대충 타일이 다 열리고 나니 더 이상 발굴할 신전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남의 신전을 노리기 위해서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해야한다. 나는 에퀴녹스님 뒤통수만 치고 (점수는 여성분이 얻고), 에퀴녹스님한테 막판에 크게 당해서 또 나락으로 떨어졌다. 초급자 룰로 했을 때는 초반부가 약간 지루한 감이 있는데, 상급자 룰은 타일 경매가 들어간다고 하니 게임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견제가 게임 재미의 상당부분을 차지해서 아내랑 돌리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날의 (나의) 하이라이트는 보드게임이 아니었다. 한참 재밌게 게임하다가 숙소에 XBox가 있어서 다트 게임을 했었는데 난 몸으로 하는게 워낙 약해서 잘 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게 뭐지? 이상하게 다트가 내가 원하는 곳으로 쏙쏙 잘 들어가는 것이다. 정중앙에 꽂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고, 가장 자리도 원하는 곳 아무대나 꽂아댈 수 있어서 거의 다트의 신으로 등극했다. 그 이후 골프도 한 게임 했는데 이것도 승리! 보드게임으로 처참하게 발렸으니 이런거로라도 만회해야지. 오스틴 모임에서는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과의 보드게임은 정말 어렵다.

역시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답게 플레이도 잘하지만 중간중간에 리액션이나 협상, 광고 등도 찰지게 잘하셔서 게임의 승패를 떠나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게다가 사회전반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에퀴녹스님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정말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아쉬운 뉴욕 여행이었지만,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찾아뵙기로 하고 보스턴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1711 2박3일 뉴욕 보드게임 모임(1)

학위 과정을 하면서 보드게임 팟캐스트인 보톡스를 엄청 열심히 들었었다.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됐고, 보드게임을 취미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 에피소드마다 투고를 보내면서 진행자들과 간접 소통도 하고, 상품으로 게임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보톡스 진행자이신 에퀴녹스님께서 미국 동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애청자로써 만나보고 싶었는데, 미국에 오신후로 친히 연락을 주셔서 만나보기로 했다. 보드게임이 모두 텍사스에 있어서 부랴부랴 쇼핑몰을 뒤져서 3인플(에퀴녹스님에게 동행도 한 명 있었다) 할만한 게임들을 찾아보고 에퀴녹스님의 추천도 받아서 이 핑계로 컬렉션을 좀 더 늘렸다. 아뿔싸! 나한테는 이 많은 보드게임들을 가져갈 가방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 기내용 캐리어는 보드게임을 넣기에는 너무 작았다. 패닉에 빠져서 우왕좌왕하다가 보드게임 가방을 하나 지를까하고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너무 비쌌다. 문득 생각난 룸메이트 할머니에게 SOS를 치니 흔쾌히 캐리어를 빌려주셨다. 여전히 내 성에 안차게 작았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냐!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만큼 가득가득 채워서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만나서 보드게임을 하려고 뉴욕까지 가다니. 내가 미쳤구나. 하지만 그만큼 보톡스는 내 박사과정 생활에 떼어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이었고 패널 한분 한분 다 마음에 들어서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에 약간의 모험을 해봤다. 그리고 친구랑 계산해봤는데, 보스턴-뉴욕은 서울-부산보다는 짧았다. 충분히 보드게임하러 갈만한 거리였다(…) 당일치기도 아니고 2박3일인데 그정도는 가깝지. 암.

보스턴에서 출발할 때 버스 출발 시간을 착각해서 눈 앞에 뉴욕행 버스를 놔두고 태연히 터미널에 앉아 있다가 표를 뒤늦게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서 간신히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버스는 와이파이는 잡히지만 인터넷은 안되는 만행을 보여줘서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보톡스를 들으며 4시간을 훌쩍 보냈다. 역시 장거리 여행에는 팟캐스트가 최고지. 보스턴에서도 손을 밖에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는데 도착한 뉴욕도 어마어마한 추위로 나를 반겨줬다. 하지만 무려 에퀴녹스님과 보드게임을 하러 가는데 이정도 추위쯤이야! 숙소에 도착하니 영상으로 잠시 모습을 확인했던 에퀴녹스님이 반겨주셨다. 예상했던 것처럼 에퀴녹스님의 동행은 여성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미모의 여성분이라는 것만 적어두자.

나를 기다리느라고 10시가 넘어서도 저녁을 못 드시고 계셨던 두 분이 해주신 떡볶이를 냠냠 맛있게 먹고 밤이 늦었지만 보드게이머가 모였는데 게임도 없이 첫날 밤을 잘 수 없어서 가벼운 카드게임인 기차섬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에퀴녹스님과 둘이서 치열하게 1등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게임이 끝나고 보니 이긴건 여성분(…) 게임을 잘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진짜 이렇게 끝날 줄이야. 하지만 이는 나의 2박 3일간의 처참한 보드게임 성적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다.

171105 미국인 보드게임 모임

보스턴 와서 처음으로 미국인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봤다. Meetup에 모임이 많긴 했지만 의외로 대부분 모임이 평일에 있어서 못 나가다가 일요일 저녁 모임이 있길래 큰맘 먹고 한번 나가봤다. 평상시에는 매직 더 게더링 모임으로 북적북적하는 곳이었는데, 일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한산했다. 매직하던 자리에 보드게임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할 것을 상상했으나 지나친 상상이었고 테이블은 대부분 비어 있어서 괜히 일찍 온 나는 게임들을 구경하면서 어슬렁거렸다.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친구 한명이 테이블에 에볼루션을 올려놓고 옆에 사람들과 잡담을 하길래, ‘옳지! 저기가 보드 게임 모임인가보구나!’ 하고 얼른 가서 자리에 앉아서 자기 소개를 했다. 게임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요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나는 낄자리가 없이 멀뚱멀뚱히 앉아 있었다.

3명 정도는 보드게임을 많이 아는 사람이었고, 그 외에는 나와 보드게임을 처음 접해보는 2명이 더 추가되서 6명이 되자 테이블 가운데 놓여있던 에볼루션을 시작했다. 기본판 밖에 못해봤는데, 무려 기후 확장에 프로모 팩까지 추가해서 게임을 시작했다. 오호! 기후 확장을 처음 해보는구나. 특이했던건 초록색 프로모 보드였는데, 다른 공룡들과 달리 개체수와 개체 크기가 1개의 큐브로 조정되어서, 훨씬 개체수를 올리기가 쉬웠다. 대신에 많이 먹진 않아서 그걸로 밸런스를 어느정도 조정한 걸로 보였다. 기후가 적당히 따뜻해지니 음식이 풍족해져서 나는 방어 특질을 덕지덕지 붙이고 열심히 음식을 모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나는 처음 보는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육식 동물들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안 잡아 먹으면 좋지 뭐. 열심히 음식을 모았는데, 기후가 점점 더 더워지더니 내 동물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멸종 위기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한 명만 위풍 당당하게 서 있었다. 프로모 보드를 level 7까지 올렸는데, 기후에는 개체 크기가 6인 종까지만 영향을 받는다고 되어 있어서 자신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게임이 그렇게 설계됐을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긱을 조금 찾아보다가 말아서 나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역시 아무도 나는 건드리지 않아서 적당히 음식을 모았지만 멸종하지 않는 level7짜리 개체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게임은 패배했다. 너무 이상해서 집에 와서 룰북을 찾아보니 충격적인 에러플이었다. 애초에 초록색 프로모 보드는 공룡도 아니었고, 따라서 개체수, 개체 크기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미국인들이다. 대체 어떻게 룰북을 읽으면 이런 플레이가 가능하지?

초보들이 끼여 있어서 그 다음으로는 7원더스를 진행했다. 이미 게임을 잘 알고 있는 4인은 카드를 보고 휙휙 넘겨서 ‘아, 7원더스는 이렇게 해야하는거구나’ 하고 게임의 참 재미를 느끼려는 찰나 초보 둘이 끼어 있어서 결국은 한턴 한턴이 느릿느릿진행됐다. 원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질 못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게임을 잘 끝냈는데, 점수를 계산할 때 다시 한 번 충격이 왔다. 내 이름을 기억 못하는건 당연한데, 점수 계산할 때 다른 사람은 이름을 적어 놓고 내 자리는 빈칸으로 놔두는 것이었다(…) 이름 다시 물어보는게 그렇게 어렵나? 사실 미국 와서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다보니 이름도 다시 안 물어보는 미국인은 충격적이었다. 하긴, 보드게임하러 오는 동양인은 본적이 거의 없어서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게임을 고르면서 내가 가져간 가벼운 카드 게임인 isle of trains를 꺼내봤으니 가볍게 묵살당하고, quadropolis라는 게임을 배웠다. 물론 이미 기분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quadropolis는 꽤 재밌는 게임이었고,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심각한 에러플과 불친절한 사람들, 썰렁한 테이블 덕분에 매우 안 좋은 인상만 남기고 모임을 마치고 말았다. 그래도 게임을 계속 하려면 몇 번은 더 나가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당장은 한국인들을 모으는 방법이 거의 없어보이고, 나는 게임이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익숙해지면 그 사람들도 나를 좀 더 편하게는 대하지 않으려나? 그러고 보면 나는 보드게임이 하고 싶은거지 딱히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는건 아닌 것 같다.

171022 보스턴 모임

텍사스에서 같이 게임하던 지인과 만나서 둘이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 친구도 전략게이머를 상당히 고파했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게임이 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의 밀봉 게임을 같이 돌려준다는 핑계를 대면서 보기로 했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밀봉 게임 중에는 무려 리스보아와 오를레앙 디럭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 해보고 싶었던 게임인데 이럴수가!! 리스보아는 둘 다 처음 돌려본 게임이라서 우리는 재밌는 시도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워낙 게임이 어렵기로 유명한 비딸 라세르다의 작품이니 각자 룰을 읽어와서 둘 모두 숙지를 한 다음 만나서 설명없이 바로 게임에 들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 설명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각자 룰의 이해도도 높고, 둘이 동시에 룰북을 봤으니 에러플도 줄어들고, 어려운 게임의 룰북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둘이 모이니 이런 훌륭한 장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보아는 어려웠다. 사실 룰북 읽을때부터 어려울거라고 감이 왔었다. 어제 룰북 읽으면서 세팅부분에서만 몇 번을 때려쳤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세팅을 다 끝내고 이제 액션을 시작해야하는데, 둘 다 카드를 들고 멍하니 보드판만 바라봤다. 대체 뭘 해야하는거지? 시작할 때의 막막함을 덜기 위해서 시작할 때 주교 타일을 하나 주지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예를 들어서 테라포밍 마스 같은 경우에도 내 손에 들어오는 수 많은 카드 중에서 뭘 골라야 할지 막막하지만, 시작 기업의 특성이 뚜렷해서 일단 기업의 특성에 맞는 카드를 고르면서 천천히 엔진 빌딩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리스보아는 그런 가이드를 전혀 주질 않고 모든걸 공개해놨기 때문에 맨 첫턴부터 모든 액션을 천천히 곱씹어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게다가 많은 액션들이 서로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액션뿐만 아니라 2, 3 액션까지는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해야한다.

리스보아 2인플을 진행하면서 아쉬웠던건, 가게를 지으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중에 배를 싸게 짓거나 공짜로 지을 수 있는게 있는데, 2인플은 배가 총 4대 밖에 없기 때문에 그닥 쓸모가 없는 보너스라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 외에는 딱히 2인플이라서 오는 단점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아쉬웠던 점은 첫플이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influence를 방해하기 위해서 놓는 official들이 크게 의미가 없어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액션을 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에 official을 몰아넣기도 힘들어서 official은 그냥 3개의 노블에 골고루 배치가 됐다. public building도 비슷하게 다음에 나올걸 미리 보여주지만, 내가 public building을 연달아 두 개를 가져가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미리 보여주는게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비딸의 게임은 테마가 정말 잘 녹아들어가 있다는게 장점이었는데, 액션 하나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테마를 즐길 여유따위는 없었다. 물론 이 모든게 게임을 처음해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익숙해지면 액션 연계도 착착하면서 다음 수도 미리 바라보고, 그러면서 게임도 빨리 끝나니 좋은 게임이 될지도 모르겠다.

룰북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건 다른데서는 별로 점수가 없는데, 스토어에서만 어마어마한 점수를 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5점짜리 스토어를 선점하는 전략으로 갔는데 여기서 그나마 점수를 많이 벌어서 수월하게 이길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녹색 주교 타일을 몇 장 들고 오더니 여기서 end game bonus를 왕창 벌어서 내 턱밑까지 쫓아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걸 보면 점수는 꽤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벌 수 있고 각각의 테크간의 밸런스도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게임이 끝나고 든 생각은, end game bonus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게임 중간중간에 얻는 점수에도 신경을 써야하지만, end game bonus를 누가 얻는가에 대한 레이싱 게임 비슷하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 익숙해지고 점수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시작하면 좀 더 치열한 견제가 벌어질 것 같다.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안해본 사람과 다시 해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룰을 직접 읽어온 두 사람도 헤맸는데, 처음 게임해 본 사람한테 가르쳐주고 게임을 하면 맨붕이 오지 않을까?

다음은 오를레앙 디럭스! 예상했던대로 수려한 미플들이 나를 맞이했지만, 미플을 쓰기가 귀찮은 두 명의 덕후는 그냥 타일로 게임을 진행했다(…) 사실 난 아트웍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상관 없었는데, 예쁜 게임을 모으고 있는 친구가 그냥 타일로 게임을 해서 좀 놀랐다. 백빌딩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이런 시스템을 접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시스템 자체는 훌륭했지만 첫 플레이여서 그런지 내가 무슨 일꾼이 필요한지 감이 잘 없어서, 그냥 무심하게 일꾼을 뽑고는 나오는대로 열심히 배치를 했다. 이 게임에서 좀 더 중요한건 건물인 것 같았는데, 처음이라 무슨 건물이 있는지 다 파악이 안되니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2인플에서 오는 단점으로 죽으러(?) 보내는 일꾼의 숫자가 턱없이 적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보너스 타일은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첫판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좀 더 익숙해져서 내 백 안의 타일을 카운팅도 좀 하고 모든 건물도 익숙해져서 어떤 콤보로 점수를 낼지 생각하면서 전략적으로 다시 해보고 싶은 게임이다.

이후에 브라스도 한판 했지만, 설명을 듣는 내내 무슨 게임인지 전혀 감도 오지 않고,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뭘 해야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맨붕에 빠지면서 게임을 했다. 슬슬 내년에 오는 내 킥스판 브라스가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71013 동생집에서 보드게임

이사를 온 후 동생 집과 운전해서 갈만한 거리가 되서 처음으로 동생집에 놀러가봤다. 예전에 동생과 제수씨랑 시카고에서 만났을 때 거의 밤을 새면서 아그리콜라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보드게임을 적당히 챙겨가기로 했다. 다만 약간 걸렸던건 조카를 돌봐주러 동생 장모님이 와 계셔서 우리끼리 게임을 하고 놀기는 약간 눈치가 보이고 혹시 장모님도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입문 게임도 같이 챙겨가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게임은 Glass road, 스플렌더, 코드네임이었다. glass road와 코드네임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지만, 스플렌더는 가기직전에 타겟에 들려서 하나 가져왔다. 대량 유통업체에 보드게임이 들어가면, 거의 아무때나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적당히 밥 먹고 노닥거리다가 장모님은 쉬러 들어가셔서 먼저 간단한 게임인 스플렌더를 꺼냈다. 스플렌더가 입문자들에게 좋은 게임이라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딱히 아주 전략적이지도 않고, 빵빵터지는 맛도 없어서 아주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그리콜라를 재밌게 했던 동생 부부도 스플렌더를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아주 전략적이지 않다는 말도 취소해야겠다. 동생이 원래 게임을 잘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해본 스플렌더를 혼자 다 이길 줄은 몰랐다. 스플렌더 따위(?) 게임에서 어마어마한 장고를 하더니, 모든판을 혼자 다 이겨버렸다. 심지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꽤나 악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몇번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 그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악수였지만, 효율을 최대화하기에는 더 좋은 방법이었나보다.

저녁을 먹고는 장모님도 합세해서 보드게임을 했다. 사실 난 원래 이날 주요 목표가 코드네임이었기 때문에 4명이서 코드네임을 돌렸는데, 대부분 많아야 2개까지 밖에 문제를 내질 못하고, 장모님이 영어 단어를 약간 어려워하셔서 그닥 반응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사실 장모님이 먼저 보드게임 가지고 온걸 해보자고 하셔서 거기에 약간의 희망을 품고, 낮에 동생 부부랑 같이 돌렸던 스플렌더를 설명하고 장모님과 둘이서 테스트 플레이를 했다. 사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보석갯수 맞춰서 카드 가지고 오는 게임이고,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눈 앞에 있는 보석 카드를 가지고 올 수 있느냐 없느냐만 중요하지 귀족이고, 다른 사람 견제고, 내가 가지고 싶은 카드 미리 찜하는 것 등은 거의 신경을 쓸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모님께서 의외로 게임을 좋아하시면서 푹 빠져드셨다. 그래서 동생 부부 포함 4인플을 돌렸는데, 동생이 장고할 때마다 장모님께서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하면서 너무 재밌게 게임을 하셔서 놀랐다. 동생 때문에 고작 스플렌더 2판하는데 3시간이나 걸리고 새벽 1시에 끝났는데도 전혀 지쳐하지 않고 오히려 아쉬워 하시는 장모님 모습에 스플렌더라는 게임을 다시 보게 됐다. 다음날도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는 장모님의 재촉에 바로 스플렌더를 꺼내서 플레이했다. 어제밤에 장모님이랑 제수씨가 동생한테 져서 억울한지 자는 내내 전략을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생은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서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내 장모님도 아니고 동생 장모님을 볼 일이 일생에 몇번이나 있겠는가?) 동생 장모님과 제수씨와의 즐거운 스플렌더 게임을 이어나갔다.

원래 처음부터 게임이 성공하면 두고 올 생각이었지만, 진짜 선물로 두고간다고 이야기하니까 다들 너무 좋아하면서, 신세계를 알려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셔서 가족들이랑도하고 직장에서도 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다음에 올 때는 다른 더 재밌는 게임도 소개시켜드린다는 약속을 하고 동생집을 나왔다. 제수씨는 못해본 glass road가 아쉬운지 게임을 열어서 룰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정도면 2시간 운전해서 동생 집에 놀러간 보람이 충분히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