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13 동생집에서 보드게임

이사를 온 후 동생 집과 운전해서 갈만한 거리가 되서 처음으로 동생집에 놀러가봤다. 예전에 동생과 제수씨랑 시카고에서 만났을 때 거의 밤을 새면서 아그리콜라를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보드게임을 적당히 챙겨가기로 했다. 다만 약간 걸렸던건 조카를 돌봐주러 동생 장모님이 와 계셔서 우리끼리 게임을 하고 놀기는 약간 눈치가 보이고 혹시 장모님도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입문 게임도 같이 챙겨가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게임은 Glass road, 스플렌더, 코드네임이었다. glass road와 코드네임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지만, 스플렌더는 가기직전에 타겟에 들려서 하나 가져왔다. 대량 유통업체에 보드게임이 들어가면, 거의 아무때나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적당히 밥 먹고 노닥거리다가 장모님은 쉬러 들어가셔서 먼저 간단한 게임인 스플렌더를 꺼냈다. 스플렌더가 입문자들에게 좋은 게임이라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딱히 아주 전략적이지도 않고, 빵빵터지는 맛도 없어서 아주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그리콜라를 재밌게 했던 동생 부부도 스플렌더를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아주 전략적이지 않다는 말도 취소해야겠다. 동생이 원래 게임을 잘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해본 스플렌더를 혼자 다 이길 줄은 몰랐다. 스플렌더 따위(?) 게임에서 어마어마한 장고를 하더니, 모든판을 혼자 다 이겨버렸다. 심지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꽤나 악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몇번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 그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악수였지만, 효율을 최대화하기에는 더 좋은 방법이었나보다.

저녁을 먹고는 장모님도 합세해서 보드게임을 했다. 사실 난 원래 이날 주요 목표가 코드네임이었기 때문에 4명이서 코드네임을 돌렸는데, 대부분 많아야 2개까지 밖에 문제를 내질 못하고, 장모님이 영어 단어를 약간 어려워하셔서 그닥 반응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사실 장모님이 먼저 보드게임 가지고 온걸 해보자고 하셔서 거기에 약간의 희망을 품고, 낮에 동생 부부랑 같이 돌렸던 스플렌더를 설명하고 장모님과 둘이서 테스트 플레이를 했다. 사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보석갯수 맞춰서 카드 가지고 오는 게임이고,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눈 앞에 있는 보석 카드를 가지고 올 수 있느냐 없느냐만 중요하지 귀족이고, 다른 사람 견제고, 내가 가지고 싶은 카드 미리 찜하는 것 등은 거의 신경을 쓸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모님께서 의외로 게임을 좋아하시면서 푹 빠져드셨다. 그래서 동생 부부 포함 4인플을 돌렸는데, 동생이 장고할 때마다 장모님께서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하면서 너무 재밌게 게임을 하셔서 놀랐다. 동생 때문에 고작 스플렌더 2판하는데 3시간이나 걸리고 새벽 1시에 끝났는데도 전혀 지쳐하지 않고 오히려 아쉬워 하시는 장모님 모습에 스플렌더라는 게임을 다시 보게 됐다. 다음날도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는 장모님의 재촉에 바로 스플렌더를 꺼내서 플레이했다. 어제밤에 장모님이랑 제수씨가 동생한테 져서 억울한지 자는 내내 전략을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생은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서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내 장모님도 아니고 동생 장모님을 볼 일이 일생에 몇번이나 있겠는가?) 동생 장모님과 제수씨와의 즐거운 스플렌더 게임을 이어나갔다.

원래 처음부터 게임이 성공하면 두고 올 생각이었지만, 진짜 선물로 두고간다고 이야기하니까 다들 너무 좋아하면서, 신세계를 알려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셔서 가족들이랑도하고 직장에서도 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다음에 올 때는 다른 더 재밌는 게임도 소개시켜드린다는 약속을 하고 동생집을 나왔다. 제수씨는 못해본 glass road가 아쉬운지 게임을 열어서 룰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정도면 2시간 운전해서 동생 집에 놀러간 보람이 충분히 있는 것 같다.

2 thoughts on “171013 동생집에서 보드게임

  1. 우와… 재밌게 하셨다더니 엄청났군요. ㅋㅋㅋ스플렌더 4인플 2판을 3시간이라니, 장고는 맞으셨네요.
    저는 그냥 즐기자고 장고까지도 안가고 날림으로 생각하다 마는데, 언제 한 번 제대로 덤벼보고 싶네요.
    완전 대성공이군요 +_+ 저도 다음 번은 부모님 다시 소개해봐야지… 이번에 오셨을 땐 두 분 다 컨디션이 안좋아서 시차적응만 하다 가셨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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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고고 부모님이 멀리서부터 오셔서 고생하다 가셨군요. 동생을 게임으로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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