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02 직장 동료와 보드게임

목마른자가 우물을 판다고 보스턴 지역으로 와서 같이 보드게임을 할 사람이 없다보니 만나는 한국 사람들마다 내 취미가 보드게임이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혹시 같이 해볼 마음이 있는지 살짝 떠보고 다닌다. 일단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 없는 것도 문제지만,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결혼 하신분들이라서 같이 취미 생활을 즐기자고 권유를 하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은 만나기가 힘들고. 그나마 하버드 모임에 기대를 했으나 내가 모임장이 아니니 마음껏 모임을 열 수가 없어서 보드게임에 대한 갈망을 풀 길이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회사 우리 부서에 한국분이 들어와서 슬쩍 보드게임을 해보겠냐고 떠봤다. 여자분하고 둘이서 만나서 게임하는게 약간 마음에 걸려서 다른 사람을 좀 더 섭외하려고 했으나 실패. 다행히 둘이서 게임하는데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예전에 알아봐두었던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을 하기로 했다. 이 카페는 입장료로 1인당 10불씩을 받아서 조금 비싼감이 있지만 어차피 둘 다 돈을 버는 입장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초보자용 2인 게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카페의 게임 목록이 온라인에 없어서 무슨 게임을 할지 미리 준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보드게임을 접해보는 사람일수록 할만한 게임 리스트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룰숙지를 철저히해서 지루하지 않게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미리 준비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나마 있을만한 게임인 로스트 시티랑 세븐 원더스 듀얼, 하나미코지 룰만 급하게 읽고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로스트 시티가 한눈에 띄어서 얼른 꺼냈으나, 으악!! 이게 뭐야? 카드게임이 아니라 보드게임이잖아? 난 로스트 시티 보드게임은 그냥 로스트 시티를 4인플로 하는 게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많은게 변한 게임이라서, 보드게임 처음 접하는 사람을 눈 앞에두고는 급하게 룰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당황하면 룰이 잘 안 들어오니 대충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정도로만 룰 숙지를 하고 게임을 했는데 은근히 내 속을 뒤집으면서 약을 올리면서 게임을 꽤 잘 따라오고 재미도 있어했다. 그리고 보드게이머들이 입문시키려는 초보자들에게 제일 듣고 싶어하는 마법의 문장이 나왔다. ‘한판 더!’ 정리를 하는동안 부랴부랴 룰북을 다시 읽었더니, 역시나, 에러플 투성이었다 ㅠ.ㅠ 에러플을 다시 바로잡아주고 게임을 하려고 하자 다시 복장을 뒤집는 한마디 ‘초보자 이기려고 이상한 룰로 한거 아니죠?’ 의외로 승부욕이 강한 아가씨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 룰을 바로 잡고 나서는 내가 연달아 두 판을 진 것이다 ㅠ.ㅠ 변명을 해보자면 로스트 시티 카드게임처럼 몇 개의 지역에만 집중해서 게임을 진행했는데, 알고보니까 보드게임 버전은 카드가 훨씬 많아서 (같은 색깔 같은 숫자 카드 2장씩. 오름차순뿐만 아니라 같은 숫자 카드도 내려 놓을 수 있다) 일단 모든 지역을 다 탐사를 하긴 해야했던 것이다. 내가 져서 그런지 다시 마법의 문장이 나왔다 ‘이 게임 하나쯤 사고 싶은데요?’

두 번째 게임으로는 동생 장모님에게도 성공했던 스플렌더! 이 카페에는 스플렌더가 2개가 있었는데, 그나마 게임이 멀쩡한건 칩이 플라스틱이라 손맛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카드가 낡을대로 낡은 예전 버전게임을 꺼냈다. 다행히 낡은 카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게임을 했는데 내가 내리 두판을 이겨서 아가씨의 승부욕을 자극해버렸다. 2판으로 감을 잡아서 이제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해서 2판을 더해서 2:2를 만들고는 승부를 내야한다고 마지막 한판 더! 앉은 자리에서 스플랜더만 5판을 했다. 그래도 동생이랑 할때처럼 한 판이 오래는 안 걸려서 다행이다. 스플렌더도 대성공!

슬슬 마무리 게임을 찾아야했다. 귀여운 컴포가 항상 먹힌다는 타케노코로 마무리. 역시나 컴포도 성공적이었고, 스플렌더와는 다르게 게임 상태가 매우 깨끗해서 게임하기 좋았다. 그런데 컴포는 깨끗한데 비해 게임에 포함된 주사위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게임을 안했을지도… 대신 일반 주사위가 하나 들어있어서 그걸로 대체해서 게임을 진행했다. 이미 게임을 어느 정도 잘한다는건 앞의 게임들에서 다 보여줬기 때문에 치사하지만 블러핑도 해가면서 미션 카드를 최대한 안내려놓으면서 엄살을 떨면서 게임을 했다. 물론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미션 카드 안 내려놔도 된다고는 알려줬다. 엄살을 떨긴 했지만, 아가씨가 미션 카드를 무섭게 내려놔서 실제로 지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주사위의 신이 도와주셔서 간신히 미션을 완수하고 게임을 끝냈다.

약 4시간 반정도 게임을 했는데 지친 기색도 없이 집중도 잘하고 게임을 재밌게 즐겨서 나도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쉬운 게임만 했지만 이해도도 높고 적극적으로 견제도 하려고 하고 무엇보다 게임이 재밌다고 구하려고까지했으니 이정도면 대성공이다. 다음에 또 모임이 있다면 초대해 달라고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무얼 준비해 가야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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